국회의원이 규제 관련 법률안을 제출할 때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해당 규제의 영향력 등을 심사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의원들이 설익은 규제 입법안을 쏟아내는 데 대해 ‘제동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한국규제학회가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연 ‘의원입법과 규제영향 분석’ 세미나에서 “의원 발의 법률안이 크게 증가하는 등 입법 환경이 예전과 달라진 만큼 의원입법도 규제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과거 국회는 통법부로 불렸는데 지금은 엄청난 양의 규제를 양산하는 등 입법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17·18대부터 의원입법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19대 국회 의원발의 입법안은 2만여건에 육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15대 국회 때 1000건을 넘어선 의원입법안은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1만건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정부입법안은 806건에서 1466건으로 1.5배 늘었을 뿐이다. 올해도 지난 5월까지 총 4544건의 의원입법안이 국회에 접수됐다. 홍 교수는 “의원입법이 엄격한 심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을 막고 입법 과잉을 견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사전 입법 평가제도를 도입해 규제영향 분석서를 첨부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도 의원입법 규제영향 평가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의원입법 때 10여개의 소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며 “우리도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규제영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하는 이유로 의원입법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원입법안 중 상당수가 사회 전체적인 후생과 공공이익에 반하는 ‘정치적 규제’이며,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은 채 졸속으로 입안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또 행정부가 까다로운 규제심사를 피하기 위해 의원입법을 활용하고(청부입법), 기본적인 비용·손익 분석을 거치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교수들도 의원입법의 문제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입법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의원입법을 지원하는 기관이 많은데, 한국은 보좌관 수도 부족하고 각 정당의 정책연구소도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법안은 집행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며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입법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규제영향 평가과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도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 가운데 대다수가 규제를 도입할 정당성이 낮은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의원입법이 급증하는 건 처리절차가 단순하기 때문”이라며 “행정부의 법안 제정절차처럼 강력한 필터링 제도를 의원입법에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들도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성웅 한국IBM 상무는 “기업 입장에선 조세가 가장 무섭고 그 다음으로 무서운 게 규제”라며 “꼭 필요한 규제라면 똑똑한 규제로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