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농협중앙회와 책임 및 권한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다 15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은 서울 충정로 농협 본사. /연합뉴스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농협중앙회와 책임 및 권한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다 15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은 서울 충정로 농협 본사. /연합뉴스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15일 임기를 1년1개월여 남겨두고 갑자기 사의를 밝힌 것은 농협중앙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처음부터 농협중앙회와 갈등

농협금융은 지난해 3월 중앙회로부터 분리해 농협은행, 농협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거느리고 출범했다. 그러나 중앙회가 지주 지분의 100%를 가지고 있어 중앙회로부터 자유롭게 경영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한 관계자는 “농협금융 회장이라고 해도 농협 전체에서의 서열은 중앙회장, 중앙회 전무이사, 농업경제 대표이사 등에 이어 5위 정도”라며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지주 회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신 회장이 예산권과 지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권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 회장도 “중앙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전산사고 직후 사표 제출

이런 상황에서 최근 농협은행 등 농협금융 계열사에 전산 장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농협금융의 전산망은 중앙회 산하 정보기술센터가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 발생에 대한 책임은 중앙회나 은행장 등 개별 금융회사 CEO가 져야 한다는 게 신 회장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금융감독당국은 농협 전산사고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뒤 결과에 따라 지주사 CEO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이때 전산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중앙회 고위임원과 신 회장, 신충식 농협은행장 등 3명의 사표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중에 신 행장의 사표는 반려했지만 두 사람의 사표는 갖고 있는 상태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지주 회장들이 잇따라 물러나거나 사의를 밝히는 분위기도 이어졌다.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해 신 회장이 물러날 때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는 신 회장 외에 중앙회 최고위급 임원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는 얘기가 한때 돌기도 했다. 하지만 “전산사고 직후 신 회장을 포함한 3명만 사표를 낸 것으로 안다”고 금융당국 관계자는 말했다. 일부에서는 ‘MB맨’으로 분류되는 최원병 회장이 새 정부 들어 분위기가 자신에게 비우호적으로 바뀌자 자신의 보호를 위해 신 회장을 비롯한 핵심 인사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핵심 인사들을 정리하는 ‘꼬리 자르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책임론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김일규/류시훈/이상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신동규 회장 일문일답 “이심전심 사퇴 결정 … 나를 필두로 임원 교체 가능성”

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15일 저녁 기자와 만나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금융 계열사 경영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왜 사의를 표명했나.

“지난해 취임할 때 1년간 해 보고 더 할지 말지 생각해 보기로 약속했다. 이제 거의 1년이 됐는데 내가 회장으로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무엇이 힘들었는가.

“생각했던 것과 농협금융의 현실은 많이 다르더라. 금융 부문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1년간 마음 고생이 참 많았다.”

▷최원병 회장과 갈등이 있었나.

“금융지주회사법에는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에 대해 자회사를 관리하고 그룹의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 등으로 명시돼 있다. 그런데 농협법에는 중앙회가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지도·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돼 있다. 경영전략 수립, 인사, 예산, 조직 등에서 모두 부딪쳤다.”

▷농협 자체적인 문제는 없는지.

“농협 문화가 밖에서 온 사람은 동화하기 어렵다. 조합이라 그런지 약간 사회주의적인 문화가 있다. 농협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 (다음 회장을) 해야 할 것 같다.”

▷전산 사고에 책임을 지는 건가.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내게 법률적 책임은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상징성이 큰 사람이 나였다.”

▷사퇴 압박이 있었는가.

“이심전심으로 보면 되지 않겠나. 프로들끼리는 ‘척’ 하면 알아 들어야 한다. ‘사퇴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심전심 아니었겠나.”

▷농협 주요 인사들이 집단 사표를 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글쎄. 한꺼번에 교체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필두로 순차적으로 바꿀 것 같다는 느낌은 갖고 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겠지.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