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근혜노믹스, 벌써 길을 잃다
요소 환원주의의 위험성
요즘 박근혜정부의 경제운용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요소환원주의의 오류를 떠올리게 된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과 창조경제를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140개 국정과제도 마련했다. 여기에 요소환원주의를 대입하면 부분(개별 과제)의 합이 전체(국민행복)가 돼야 한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이 세계관의 결함, 다시 말해 140개를 다 모아도 유기체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경제의 생명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성장과 복지, 일자리와 규제, 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는 상호 보완적·대립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 바구니에 담으려다간 자칫 한쪽의 생명을 끊어놓을 수도 있다. 이것이 오랜 세월 유기적 상호작용이라는 진화를 거듭해 성공적으로 조직과 기관을 구성해온 자연계의 세포와 다른 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정부는 기업들이 미래성장동력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계는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실제 140개 국정과제에 포함돼 이미 입법이 완료됐거나 입법을 앞두고 있는 수많은 법안들이 일자리 창출과 규제완화 의지를 비웃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러고도 경제를 살리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곤란하다. 대통령 개인의 진정성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무지와 오해의 문제다.
물고기 죽고나면…
대통령 공약이행의 ‘신성’에 갇혀버린 관료들도 결코 ‘NO’라는 이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우선 올 1분기 국세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조원 가까이 덜 걷혔다는 내용을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했을지가 궁금하다.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부족이 심각하다”는 현오석 부총리의 설명에 대통령은 “그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비과세·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적극 추진하되 추경과 금리인하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부총리 특유의 논법에 대통령은 재차 “그것만으로 되겠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부총리가 어떤 답을 했건 정답은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 경제상황으로는 향후 5년간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135조원의 신규재원 마련은커녕 연내 2차 추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제활동의 결과물일 뿐인 세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은 김덕중 국세청장을 불러 진지하게 한번 물어보시길 바란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스무고개 넘기 식의 문답을 되풀이하는 동안 정부 곳간이 거덜나면 결국에는 국민이 “이제 어떻게 하실 것이냐”고 대통령에게 물을 것이다. 기업들은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대통령은 어찌할 것인가. 물고기가 죽고 나면 ‘윤창중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한 정도의 대국민사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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