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생태계를 살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정부부터 창조경제를 위한 벤처 생태계를 새로 만들겠다고 나설 정도다. 벤처 생태계 육성을 통해 기업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창업가들이 쏟아진다면 백번 환영할 일이다. 일자리도, 새로운 성장동력도 창출될 수 있으니 누군들 마다하겠나.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벤처 생태계가 없는 게 아니라 왜곡돼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말 국내 벤처기업 수는 2만8193개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02년 8778개에 비하면 3배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2002년 4.28%였던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 비중은 지난해 1.12%로 오히려 주저앉았다. 2002년 1조4129억원에 달했던 창투사 투자금도 지난해 4447억원으로 급감했다. 벤처기업은 늘어나지만 정작 투자사들은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 해답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정부가 벤처라고 도장 찍어준 소위 인증기업만 잔뜩 늘었다. 실제로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진짜 벤처’는 3%가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 의해 양산된 ‘무늬만 벤처’다. 벤처기업의 자금줄도 정부가 차지한 지 오래다. 국내 벤처기업 중 98.5%가 정부·공공기관 등으로부터 정책자금이나 대출보증을 받은 곳들이다. 더구나 정부 지원 후 매출이 줄거나 정체된 벤처가 도처에 널렸다는 게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걸핏하면 벤처캐피털을 질책한다. 벤처캐피털이 초기벤처보다 상장을 앞둔 기업만 골라 안전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상장 말고 다른 자금회수 창구가 없는 현실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상장보다 인수·합병이 주된 자금회수 시장이다. 하지만 국내 인수·합병 시장은 규제 투성이다. 인수·합병의 가장 큰 수요자인 대기업을 출자규제 등으로 손발을 묶으려는 게 정부다. 벤처캐피털이 성장하려야 성장할 수 없는 구조다. 창조경제를 하려면 이런 왜곡부터 바로 잡는 게 순서다. 하지만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온 부처가 정책자금을 총동원해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낡은 방법의 재판이다. 이스라엘 요즈마펀드가 성공한 것은 민간에 맡겼기 때문이다. 관료들에게 쇠귀에 경 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