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부터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이 ℓ당 2000원을 넘어서면 석유공사를 통해 전국 886개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가격을 ℓ당 1800원으로 고정시키기로 했다. 정부가 알뜰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 나온 기름값 안정대책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정부는 28일 물가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석유제품 가격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올 들어 ℓ당 1920원대에서 약보합세를 보이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지난달 중순 이후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며 27일 현재 1990.04원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이달 휘발유 가격이 ℓ당 2000원을 돌파하는 즉시 석유공사가 전국 6개 비축기지에 보유하고 있는 휘발유 3000만~3500만ℓ를 ℓ당 1800원으로 고정시켜 알뜰주유소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가격은 유가 2000원 도달시 SK·GS·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 추정가격(ℓ당 1930원)보다 130원가량 낮은 수준이다. 정부 관계자는 “휘발유 가격 ℓ당 2000원 선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알뜰주유소의 시판가를 ℓ당 1900원 선에 묶어 놓을 경우 일반 주유소의 가격 인상 시도를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이날 열린 물가관계부처 회의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대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공요금의 추가 인상을 억제하고 정부가 비축한 농산물을 풀어 서민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앞으로 매주 한 차례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하는 관계부처 물가회의를 운영하기로 했다.

기업들 "공공료 다 올려놓고…"

정부 출범 초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물가 안정 대책에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출범과 동시에 주요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을 억제하겠다며 480여개로 이뤄진 소비자물가지수 외에 고추장, 설탕, 우유 등 52개 주요 생필품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MB 물가지수’를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제대로 실효성을 따지지도 않은 채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주요 공기업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전기, 가스, 수도요금을 줄줄이 올린 것은 눈감아주면서 민간 식품업계가 가공식품 가격을 인상한 것을 비난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엔 정부 주도로 택시요금 인상안까지 추진하고 있어 지난 27일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때늦은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따라 민간 기업들은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미 제조·유통원가가 오른 상태에서 정부가 자신들만 압박한다며 볼멘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대형마트의 한 관계자는 “인위적인 물가 통제는 별 효과 없이 시장 혼란만 부추긴다는 것이 역대 정부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이번 기름값 대책 역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주요 알뜰주유소가 이미 비싼 가격에 구매해 놓은 재고 물량을 갖고 있는 데다 평균 마진과 배송비 등 판매가격에 붙이는 비용도 제각각이어서 가격 인하폭이 미미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에 ℓ당 1800원에 공급할 수 있는 재고 물량도 40여일치에 불과해 향후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정호/이심기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