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주 가능성 낮아"…재판부, 허점투성이 경찰 수사 질책
'계획적 살해' 의문은 여전…본격 공판서 치열한 법정 공방 벌어질 듯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측 '방패'인 변호인단이 '창'인 검찰에 판정승을 거뒀다.

수도 프리토리아 법원의 데스먼드 나이르 판사는 22일(현지시간) 구속적부심에서 여자 친구 리바 스틴캄프(29)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피스토리우스에게 보석을 허락해 피스토리우스 측 손을 들어줬다.

배리 루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피스토리우스측 변호인단은 지난 19일부터 4일 동안 피스토리우스 보석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남아공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해리 넬 검사의 예봉을 꺾는 성과를 거뒀다.

넬 검사는 과거 재키 셀레비 전 경찰청장을 부패 혐의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끌어낸 베테랑 검사다.

검사 출신의 루 변호사 역시 과거 광업계 거물 로저 케블 살해 사건에 관여하는 등 남아공의 엘리트 변호사로 평가됐다.

◇ 재판부, 경찰의 허점투성이 수사 '질책' = 나이르 판사는 이날 결정문을 낭독하는 과정에서 계획적 살인 사건이라고 재판부에 주장한 경찰 수사의 허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이르 판사의 결정문 낭독 육성은 현지 뉴스전문 채널 eNCA가 생중계했다.

영상 중계는 금지됐다.

나이르 판사는 이 사건 주무 수사관으로 구속적부심에서 검찰과 변호인의 교차 심문을 받은 힐튼 보타 수사관 등 경찰 수사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했다.

먼저 프리토리아 동부 피스토리우스 자택에서 총성이 들리기 전 다투거나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에 대한 신뢰도 문제를 들었다.

보타 수사관은 그런 증언과 관련, 루 변호사가 문제의 진술을 한 주민의 집이 피스토리우스 집에서 600m 떨어져 있는 점을 지적하자 이를 인정하는 듯 했다가 나중에 300m로 수정했다.

나이르 판사는 또 보타 수사관이 피스토리우스 자택 침실을 현장보존용 신발을 신지 않고 누비는 등 현장 증거를 훼손한 점도 거론했다.

특히 침실에서 발견된 4개의 휴대전화기의 통화 내역을 적극적으로 통신 당국에 확인하지 않은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피스토리우스는 화장실에 든 '침입자'에 총을 쏜 뒤 나중에 스틴캄프가 총탄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휴대전화기로 구급차를 불렀다고 서면진술서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경찰은 구속적부심 과정에서 휴대전화기 통화내역 조회를 관련 기관에 의뢰했으나 결과가 통보되지 않았다고만 했다.

◇ '해외도피 가능성' 검찰측 주장 수용 안 해 = 나이르 판사는 먼저 구속적부심이 스틴캄프 사망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본격적인 재판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석이라는 제도가 기본적으로 사건을 저지른 혐의자가 당국의 구금 시설 밖에서 거주하며 재판을 기다리는 것임을 상기했다.

이어 나이르 판사는 보석이 허가될 경우 피스토리우스가 외국으로 달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이르 판사는 검찰이 피스토리우스가 이탈리아에 집을 갖고 있으며 중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그가 보석으로 풀려나면 외국으로 도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피스토리우스측 변호인은 이탈리아에 집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변호인은 또 장애인인 피스토리우스가 이미 남아공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어서 외국으로 달아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나이르 판사는 이탈리아에 집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찰이 인터폴 등에 의뢰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조사를 왜 하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였다.

◇ '계획적 살해' 의문은 여전 = 나이르 판사는 경찰 수사를 비판했지만 그렇다고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사건이 과실치사에 해당한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피스토리우스가 화장실에 침입자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왜 침대에 있는 것으로 생각된 스틴캄프와 함께 침실문을 통해 달아나지 않았는지 의심이 든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또한 화장실에 든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를 왜 더욱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4일로 잡히 이 사건 공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계획적 살인-과실치사'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민철 특파원 minch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