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쨍그랑! 나는 접시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졌다. 배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놀란 남편은 급히 119를 불렀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친 우리에게 의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난소암입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건 아니야. 내 얘기가 아닐 거야.’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오진이 아니냐고 묻고 또 물었다. “1주일 뒤에 오세요. 수술이 가능한지 그때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 부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넋이 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생인 아이들을 생각하니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두 형님께 한 명씩 부탁할까? 아니면 친정 어머니께 둘 다 맡길까? 내가 죽으면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리라고 할까?’ 남편도 걱정이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사업해 왔는데, 당시엔 3년째 수입이 없었다.

1주일 후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수술하면 완치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눈이 감기며 저절로 “감사합니다”란 말이 흘러나왔다. 장장 6시간 걸린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병실에 누워 아이들 얼굴을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난소나 자궁이 없어졌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고마울 뿐이었다.

그때부터 현실적인 걱정이 찾아왔다. ‘병원비는 어떡하지?’ 우리 형편에 큰 수술을 감당할 병원비가 있을 리 없었다. 몇 년 전에 가입했던 건강보험이 생각났다. 설계사인 외숙모의 권유로 마지못해 들었던 보험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보험금을 신청했다. 며칠 뒤 통장을 확인해 본 나는 눈을 의심했다. 암 진단비와 수술비로 2500만원 넘는 돈이 입금돼 있었다.

솔직히 보험을 들 당시만 해도 나는 보험을 꺼려했다. “난 암 같은 거 안 걸려요. 그냥 버리는 셈치는 거죠, 뭐.” 투덜거리는 나에게 외숙모는 “널 위한 보험이야”라며 설득했었다. 덕분에 나는 5년에 걸친 암 치료를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작년 1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우리에게 그때 보험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병원비 때문에 다들 고통에 시달려야 했을 테고, 서로를 원망하다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얘기한다. “보험으로 준비하세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인생이에요. 날 봐요. 보험 때문에 살아났잖아요.”

▶이 글은 2012년 삼성생명이 주최한 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