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모두 이주했는데 뒤늦게 사업시기를 조절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서울 송파구 관계자)

서울시가 전세난을 대비해 이주 수요가 많은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며 도입한 ‘정비사업 시기조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기조정 절차가 진행되기 이전에 조합원들이 이주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0가구가 넘거나, 해당 자치구 전체 주택 수의 1%를 초과하는 재건축 단지는 시기조정 대상이다. 서울시는 ‘시기조정위원회’를 통해 이들 대규모 단지의 사업시행 인가 등 인·허가 절차를 최대 1년간 늦출 수 있다. 주민들이 한꺼번에 이주할 경우 주변지역 전세시장이 크게 불안해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첫 시기조정위원회가 열린 지난 14일, 2500가구 규모의 고덕시영 재건축 단지가 심의에 올랐지만 시기조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이주가 끝난 상태여서 인·허가를 늦출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총 6600가구의 가락시영아파트도 시기조정 대상이지만 사후약방문이 될 공산이 높다.

송파구에 따르면 이곳 역시 이미 3분의 2가 넘는 4500가구 주민들이 이주를 끝냈다. 송파구 관계자는 “8월부터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하면서 주변의 방 2개짜리 빌라 전셋값이 많이 올랐다”며 “앞으로 시기조정위원회가 열려도 이주가 거의 마무리돼 무의미한 행정절차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고덕주공2단지(2600가구), 고덕주공3단지(2580가구) 등도 조합 측에서 이주를 진행할 경우 서울시는 막을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고덕시영의 시기조정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도 “이주를 막을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시기조정 절차는 무의미하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기조정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이주하는 단지가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털어놨다.

재건축 단지의 이주수요는 전세난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조합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기조정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운용으로 효과가 반감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서울의 전셋값은 지난해 10% 넘게 치솟았고, 올해도 1.59% 뛰었다.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이정선 건설부동산부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