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왜 법인세를 내지 않았죠.”(재키 도일프라이스 영국 보수당 의원)

“우리는 법대로 냈습니다.”(매트 브리틴 구글 영국법인 부사장)

“지금 지적하는 것은 ‘불법’ 문제가 아니에요. 구글의 ‘비도덕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마거릿 호지 노동당 의원)

지난달 12일 영국 하원의 공공회계위원회(PAC) 청문회장. 의원들과 증언대에 불려나온 구글 아마존 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 중역들 간 설전이 벌어졌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하는 것은 관행적 절세라는 기업들의 항변과 비도덕적 행위라는 의원들의 공방이 오갔다.

미국 금융위기·유럽 재정위기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나타난 충돌과 논란이다. 기업 유치를 위해 그동안 조세피난처 활용을 눈감아줬던 영국 미국 등 주요국들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단속의 칼을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버뮤다, 케이맨군도 등 세계 조세피난처로 들어온 자금은 2008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산으로 7조달러(약 7518조원)에 달한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배가 넘는 규모다.

◆불법과 적법 사이의 ‘꼼수’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인 미국 구글은 지난해 조세피난처로 수익을 옮겨 20억달러(약 2조1000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회피했다. 커피 업체 스타벅스는 3년간 영국에서 4억파운드(약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조세피난처 덕분에 법인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글의 ‘세금 꼼수’는 간단했다. 법인세가 없는 영국령 버뮤다에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수익이 나면 로열티·컨설팅비 명목으로 수익을 버뮤다 회사로 넘겼다. 비용이 생기면 반대로 가장 세율이 높은 국가로 옮겨 공제받았다. 유럽 본사는 법인세율이 12.5%로 낮은 아일랜드에 뒀다. OECD 국가 평균 세율(25.25%)보다 훨씬 낮은 곳이다. 구글은 이런 꼼수로 지난해 미국 외에서 발생한 수익의 딱 3.2%만 세금으로 냈다.

또 다른 미국 기업인 아마존과 스타벅스도 비슷한 방식을 썼다. 온라인 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유럽 본사를 룩셈부르크에, 스타벅스는 네덜란드에 설립했다. 두 국가 모두 법인세율이 낮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도 아일랜드에 있다.

이 같은 세금 회피가 불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적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조세피난처는 일종의 회색지대다. 국가나 지역 간 세율이 달라 생긴 빈 틈을 글로벌 기업들이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절세는 적법한 절차 안에서 세금을 줄이는 것이지만 세금 회피는 불법은 아니지만 ‘꼼수’를 쓴다는 의미가 강하다.

◆글로벌 기업, “왜 이제 와서…”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을 회피할 방법이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구글의 납세 구조가 자랑스럽다”는 말로 논란을 일축했다. “자본주의란 이런 것”이라고도 했다. 세율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글로벌 영업을 하면서 절세를 하는 것뿐이라는 얘기다. 스타벅스는 “고용 효과 등을 따지면 영국 경제에 매년 8000만파운드(약 1383억원)씩 기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런 주장은 “탈세도 부도덕하지만 쓸데없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더 나쁘다”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이고, 최대한 비용을 줄여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주는 게 최고의 미덕이라는 것이다. 조세피난처를 애용하는 애플도 자사의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만든 제품을 팔아 남긴 이익을 떼어내 다른 국가에 많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각국 정부도 이 같은 관행을 모르지는 않았다. 기업들이 조세피난처를 적극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00여년 전부터다. 1차 세계대전 때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세율을 대폭 올리자 세금 피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는 주요국 정부가 감세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조세피난처에 기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업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마녀사냥식으로 몰아붙이느냐”고 항변하는 이유다.

◆국제 공조식 단속 가능할까

조세피난처 활용에 대한 각국 정부의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이후 겹쳐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다. 조세피난처로 줄줄 새는 세금을 막아 불황으로 부족해진 세수를 채우는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조세피난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조세피난처를 지목했다. 위기를 불렀던 각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유동화 상품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설계·유통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이 영국령 케이맨군도 등에 법인을 세워 파생상품을 파는 식이었다. 영국 정부는 조세피난처를 강력 단속한다는 취지에서 최근 7700만파운드(약 1300억원)를 들여 세금 전문가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 나라 단독으로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세금 회피를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해법은 국제적 공조 체제에 있다. 당장 영국과 독일은 내년 2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관련 보고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열린 멕시코 G20 재무장관회의를 통해 “이미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했다. 유럽은 ‘세금 정상회담’까지 구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고위 인사들이 내년 중 국제회의를 열어 주요국의 실질 세율 동일화를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데다 글로벌 기업들의 반발이 커 국제적 공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외자유치 외에는 경쟁력이 없는 국가나 지역은 기업들에 조세피난처를 제공하는 유혹을 벗어나기 힘들다. 케이맨군도는 지난 7월 외국인에게 과세하려다 강력한 저항을 받고 결국 철회했다.

조세피난처는 어디에 - 중남미 카리브해에 몰려 있어…한국, 서류상 회사 필리핀에 1374개

조세피난처는 케이맨군도, 버뮤다, 바하마 등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에 집중돼 있다. 제조업 등의 기반이 없는 영국령 국가들이 외국 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 없는 천국을 많이 만들었다. 스위스와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 유럽에도 있고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에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9년 조세피난처를 ‘블랙리스트’와 ‘회색리스트’로 구분해 지정했다. 조세정보 공개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블랙리스트는 세금 정보를 공개한다는 이행 원칙을 약속하지 않은 국가이고, 회색리스트는 약속을 했지만 아직 이행하지 않은 국가나 조세피난처를 말한다. 당시 블랙리스트에는 코스타리카 말레이시아 필리핀 우루과이 등 4개국이 올랐다. 회색리스트에는 브루나이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모나코 등 38개국이 포함됐다. 이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4개국은 조세정보 교환에 합의하면서 회색리스트 국가로 바뀌었다.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각국 정부는 OECD와는 별개로 자체 조세피난처 혐의국 명단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한국 관세청은 세금 회피 및 불법 외환 거래 가능성이 존재하는 62개국을 우범지역(사실상의 조세피난처)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기업들은 조세피난처에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다. 버진아일랜드(영국령)에는 페이퍼 컴퍼니가 50만개나 등록돼 있다. 케이맨군도(영국령)는 인구(5만명)보다 페이퍼 컴퍼니(9만개)가 더 많다.

한국 기업이 페이퍼 컴퍼니를 가장 많이 설립한 곳은 필리핀(1374개)이다. 국외 소득에 대해 매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데다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조세피난처 라부안에도 672개의 한국 기업 자회사와 지사 등이 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