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이사회가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 결정을 다시 오는 18일로 미뤘다.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의 극심한 대립이 벌써 3개월째다. 경영진은 그룹의 미래를 위해 ING생명 인수가 꼭 필요하다는 반면 사외이사들은 저금리 고령화시대에 보험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맞서고 있다. 일부 사외이사들의 반대가 완강해 인수안의 이사회 통과 여부도 미지수다. ‘베이징 술자리 소동’까지 불거져나와 금융감독 당국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어떻게 결론 나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사회가 중요한 경영판단에 앞서 격론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KB금융은 사외이사들의 반대 덕에 인수가액을 당초 3조4000억원대에서 2조2000억원대로 낮춘 부수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번 갈등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 아래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에 의문을 품게 하는 게 사실이다. 사외이사의 역할이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는 것이라지만 권한만 도드라지고 책임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현주소다.

금융회사를 포함한 기업의 경영판단은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데서 출발한다. 반면 외부에서 들어간 사외이사는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갖게 마련이다. 이런 속성을 갖는 사외이사가 주요 경영판단에 참여하기에 모순이 발생한다. 경영진이 투자하지 않고 들어오는 수익만 챙긴다면 임기 중 성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투자와 리스크를 회피하는 기업은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경영은 리스크에 대한 고도의 계산을 수반하는 과정이기에 의사결정 구조가 일원화된 의사동일체여야 하는 것이다. 다수결과 이견 조정을 통한 합의를 중시하는 국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사외이사가 거수기여도 문제이지만 경영진과 끝없이 각을 세우는 것 역시 문제다. KB금융 이사회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오랜 관치 아래 주인 없는 은행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숙제로 볼 수 있다. KB금융은 12명의 이사 중 사외이사가 9명에 이르고 사외이사를 사외이사끼리 뽑는다. 사외이사 의사를 거슬러 중대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다. 슬기로운 결말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