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이 그러하고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런 현상이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파장은 빠르고 직접적이다. 불황기를 맞은 기업은 구조조정으로 대비하기도 하지만, 극장이나 예술단체는 대처 방법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연은 많은 사람이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노동력을 지불하는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공산품처럼 라인의 전산화자동화로 제품 단가를 낮출 수도 없다. 오직 공연기간을 늘려 겨우 회당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런던의 내셔날 시어터가 항상 유료관객으로 가득해도 수지균형을 맞추지 못한다. 부족한 부분은 정부와 기업 혹은 개인의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아트센터인 예술의전당도 마찬가지다. 티켓 판매, 식음료사업, 주차비, 캐릭터상품 판매 등 극장 수입을 모두 합쳐도 재정 자립도는 50% 선이라고 한다. 한때 70%를 넘어선 적도 있었지만, 공공성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제 대선 후보들이 문화 예산을 2%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메세나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는 법안을 다시 발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공감과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택시 기사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했더니 사고 건수가 확연히 줄었고, 노숙자에게 시를 가르치니 사회 복귀자가 증가하고, 직원들에게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체험케 함으로써 생산성이 높아진 사례에서 근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메세나 참여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예술을 지원하는 차원이 아니라 기업문화의 변화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참가 기업이 642개사에 이르고, 2011년 지원금은 1627억원이다. 결코 적지 않은 수치이기에 모든 참여 기업에 존경을 드린다. 그리고 덧붙여 기업이 예술단체를 직접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직원들이 공연이나 전시회 관람료를 지원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대상을 일반 시민으로 확대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영국의 트래블렉스는 내셔날 시어터 공연을 12파운드에 볼 수 있도록 관람료 차액을 10만여명에게 지원하고 있다.

예술가와 정책당국이 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예술이 개개인의 삶의 양식을 바꾸는 데 유효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저녁마다 러시아 극장 앞에 관객들이 줄을 서고, 빈 시민들이 모차르트를 듣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외식비를 아껴 극장예술을 즐기는 생활습관 때문이다. 우리도 연말 각종 동호회와 직장 송년회를 공연 관람으로 대체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각 대학의 최고위과정이나 ROTC, 고시동기회 등 각종 친목회가 극장을 찾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발견한다면 과장일까.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