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필요한 제도일까.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 보자. 특허제도를 처음 실시한 베니스의 번영과 이를 이어받아 특허를 도입한 대영제국의 번성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후 1885년 특허제도를 도입했고 강대국이 됐다. 국가 부흥기에는 항상 산업기술의 발전이 수반됐고 특허제도는 이를 뒷받침해 왔다. 이처럼 특허제도가 기술 및 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많은 역사적 사실과 통계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특허제도는 수백 년간 시행돼 왔다.

최근 특허무용론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특허무용론의 논지는 무엇인가?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기술개발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허제도와 같은 인위적인 제도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특허무용론은 늘 있어 왔다. 멀게는 19세기 중엽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특허제도의 폐지가 논의됐고, 가까이로는 2000년 BM특허(Business Method Patent·컴퓨터 및 네트워크 등의 통신기술과 사업아이디어가 결합된 영업방식에 주는 특허)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을 때 특허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발명이 나올 때마다 특허무용론은 어김없이 제기됐지만,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일시적인 논의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특허무용론의 논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특허무용론은 특허권 보호가 오히려 기술 개발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으로 돌아가 특허제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특허법에 따르면, 특허법의 목적은 ‘발명을 보호 및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 발전을 촉진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특허옹호론이나 특허무용론이 모두 기술 개발의 촉진을 그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고도로 발전된 기술 시대를 넘어 기술 융합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이전의 혁신 결과물의 토대 위에서 나온다. 특허무용론은 기술의 끊임없는 진보와 이처럼 기술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 기업에서 특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비즈니스 도구다.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고 받는 카드다.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특허를 구매하기도 하고, 특허에 대해 상대방에게 실시허락(license)을 주기도 한다. 특허권이 존중되고 강력하게 보호될 때 특허 공유는 더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특허제도는 발명자에게 독점배타권을 부여한다. 특허권을 침해당하면, 특허권자는 민사적으로 침해금지를 청구할 수도 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일부의 경우에 침해금지청구권이 반특허 정서의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특허법은 이미 특허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허발명을 제3자가 실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고 있다. 법정실시권 및 강제실시권제도가 그것이다.

특허제도는 기술공개의 대가로 발명자에게 보상을 해 주는 제도다. 기술공개의 대가가 없다면 기술은 비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기술의 융합과 개방형 연구가 오늘날 연구·개발의 대세임을 감안하면 금전적 손해배상의 인정을 강화함으로써 특허권의 보호를 두텁게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전적 손해배상은 특허권자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막대한 비용과 투자 이익을 상회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술은 다시 비밀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특허권자의 승소율과 지나치게 낮은 손해배상판결은 기술을 비밀로 만들 것이다. 기술이 비밀이 되면 정보의 흐름은 차단되고 기술 개발은 퇴보하게 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특허를 경험한 많은 기업들이 특허보호가 미진하다고 느끼고,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의 상당 부분을 비밀로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이 비밀의 영역에서 공개의 영역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허권의 보호가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기술 혁신 위에 다시 혁신을 더해서 인류는 발전하고 진보해 왔다. 기술 발전의 원동력인 특허는 합법적으로 사용돼야 하고,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이경란 < 특허법인 이지 대표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