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이후 대기업 중 자금사정이 어려운 곳이 있다는 소문이 금융시장에 나돌았다. 경제지표를 보면 아마도 소문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상장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금융이자도 못 갚은 대기업이 2007년 이후 최고치인 27%, 중소기업은 37%에 달한다. 더욱이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은 상장기업의 18%(대기업 15%, 중소기업 21%)로, 5년래 최고치다. 앞으로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상황이다.

기업으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한 ‘좀비기업’이 상당수에 달해 잘못 관리되면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손실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대내외 경기회복 지연, 환율하락 등으로 내년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예상되고 있어 좀비기업들의 회생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좀비기업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된 계기 중 하나는 금융당국의 섣부른 국제회계기준(IFRS) 조기 도입이다. 회계기준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 아래 금융당국은 2007년 도입계획을 발표한 뒤 지난해부터 상장기업 및 금융회사에 대해 적용을 의무화하고 조기 도입을 독려해 왔다. 이에 대응해 기업들도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면서 IFRS를 구축했다.

하지만 IFRS가 원칙 중심이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금융상품, 연결, 대손충당금, 영업부분 공시와 관련해 미흡한 점을 드러냈다. 즉, 종전과 달리 영업이익을 표시할 의무도 없고 표시해도 표준화된 기준이 없었다. 상당수 좀비기업들이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해 영업외수익 항목인 환차익, 부동산 매각이익을 영업이익에 포함시킴으로써 영업손실이 4년 연속 시 관리종목 지정, 5년 연속 시 상장폐지라는 코스닥 규정을 피해 퇴출되지 않고 계속 존속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감독당국이 올해 말부터 종전처럼 영업수익을 표시하고 산정기준도 종전 방식대로 하기로 기준을 개정한 점은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대선을 앞둔 당국의 감독유예 경향과 회계기준 개정에 따른 부실기업 식별 효과가 내년 상반기에나 반영될 수 있어 좀비기업이 바로 퇴출되지 않고 그 이후에나 퇴출이 시작될 것 같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지난번 부실저축은행 퇴출로 거액의 노후자금을 상실한 투자자들이 재차 재산상의 손실을 입고 빈곤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성급한 IFRS 도입과 달리 일본은 도입 일정을 확정하지 않고 있고, 미국도 당초 일정을 연기한 뒤 부정적인 내부평가 보고서를 내는 등 도입을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은 면밀한 검토없이 서둘러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재개정하고 법규를 정비해야 했다. 되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IFRS를 도입한 기업들도 추가로 새로이 바뀐 시스템 구축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행정당국의 한건주의, 행정편의주의 병폐가 고스란히 나타난 셈이다.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중요사항으로 종전 회계제도 아래에서 감독당국으로부터 바젤2 관련 내부신용평가법을 승인받은 은행들은 새로이 IFRS 하에서 적정성 여부를 승인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년부터 ‘은행 자본·유동성 규제 기준안’인 바젤3가 시행되면 추가 자기자본 부담이 늘어나게 돼 위험산출 적정성 여부를 더욱 철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임기 말 대내외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각종 정책 실패의 후유증이 표면화되는 반면 대선으로 불확실성은 확대되는 판국이다. 따라서 기업 및 공공부문의 투자가 지연되는 상태가 지속되면 내년 우리 경제는 본격 위기국면에 처할 수도 있다.

경제 외적 요인으로 좀비기업 등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적기에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예방조치가 지연될 경우 병세를 악화시켜 대선이 끝난 내년에는 더 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종진 < 명지대 교수·경영학 fssorkr6@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