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던 1980년.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 마지막 해를 맞고 있었다. 전년에 3.1%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미국 경제는 오일쇼크를 견디지 못하고 마이너스 성장(-0.3%)으로 곤두박질쳤다. 그해 재선에 도전한 카터 대통령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완패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경기회복 프로그램인 레이거노믹스를 가동했다. 집권 첫해 2.5% 성장에 그쳤던 미국 경제는 4년차에 7.2%의 고성장 가도를 달렸다. 레이건은 198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엇갈리는 한·미 선거 분위기

미국 대선에는 있는데 한국 선거에는 없는 게 있다. 바로 ‘경제’다. 8일 한국경제신문이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한·미 경제와 선거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1960년 이후 미국 대선은 집권당의 경제성적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마지막 해 성장률이 첫 해보다 높으면 100% 재선에 성공했고 그 반대면 어김없이 정권이 교체됐다. 김인철 차기 한국경제학회 회장(성균관대 교수)은 “미국은 정치-경제 사이클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와 경제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다만 집권당이 호경기 때 이익을 누리는 정도보다 불경기 때 불이익을 받는 정도가 더 큰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선거는 경제와 따로 놀았다. 경제 이슈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명망가의 출현, 연합과 단일화 등의 정치 공학적인 변수가 대선 판도를 좌우했다.

◆미국, 경제 실패 시 100% 정권교체

이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도 경제성장률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오바마 집권 첫해(2009년) -3.1%였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올해 2%대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9월 실업률도 44개월 만에 7%대로 떨어졌다.

1989년 레이건에 이어 정권을 승계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저축대부조합 파산사태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1992년 말 치러진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1989~1990년 2년간 파산한 은행 수는 915개에 달했고 총 손실액만 1600억달러였다. 반면 정권을 넘겨받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은 ‘골디락스 경제(물가안정 속 경제성장)’를 기반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한국, 경제심판론 안 먹힌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상황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다.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국내에서는 다섯 번의 대선과 일곱 번의 총선이 열렸다. 대선에서 경기 호황기에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1987년 12대 노태우 대통령과 2002년 15대 노무현 대통령 당선 등 두 차례에 불과했다. 경기침체기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건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제14대 대선이 유일하다.

총선 역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기 어렵다. 경기 고점에서 여당이 승리해 여대야소 정국이 만들어진 것은 1996년 15대와 2008년 18대 총선 등 두 번이다. 경기 저점에서 여소야대가 이뤄진 적도 1992년 14대 총선뿐이다. 일곱 번 중 세 번만 호황기 여대야소, 침체기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가 나온 것.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집권당 경제 정책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에 대한 심판론이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요인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경기악화가 집권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연말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경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부담감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역-진영논리 우선

다섯 차례의 대선 중 경제상황과 선거결과가 일치한 세 번도 속을 들여다 보면 경제 외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은 김대중-김종필 간 합종연횡인 ‘DJP연합’ 덕이 컸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2002년 선거 때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가 여권 지지층 결집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경제가 국내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정책대결보다는 지역감정 및 진영논리가 횡행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지난 총선과 다가올 대선을 보면 정책은 잘 보이지 않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만 난무하고 있다”며 “여야가 정책 선거를 펼칠 수 있을 만큼 국민의식이 선진화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