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 A씨가 퇴원했다. 부인의 성화에 의료진이 퇴원을 허락했다. 집에 도착한 A씨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마자 사망했다. 이 사실을 안 A씨의 여동생은 부인과 의사들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2004년 6월 대법원은 ‘부인은 살인죄, 의사는 살인방조죄’라는 유죄판결을 내렸다.

2008년 초 세브란스병원. 70대 중반의 김모 할머니는 내시경 검사를 받던 중 심장마비에 이은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호흡기 제거를 거부하는 병원을 상대로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듬해 5월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지요청을 받아들였다.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로, ‘김할머니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일단 법제화 추진

두 사건은 생명연장만을 위한 치료(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떤 조건으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것이었다.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이 같은 혼선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 2일 회의를 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나온 대법원 판결 등으로는 다양한 케이스를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2009년 김할머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에 필요한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했을 것 △환자의 사전 의사표시가 있을 것 △사전의사 표시가 없을 때는 평소의 가치관 등으로 추정할 것 △사망단계 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할 것 등이었다.

판결 직후 사회적 관심은 더 높아졌다. 법원이 존엄사 또는 안락사를 인정한 것이라는 논란도 확산됐다. 정부는 2009년 12월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범사회적인 협의체를 만들어 네 가지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본인이 사전에 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전제로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 특수한 연명치료만 중단할 수 있다고 제한했다. 영양공급, 체온유지 등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일반 연명치료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사회적 논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분명한 법적근거는 없다. 대법원 판결은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기 힘들고, 사회적협의체 합의사항이나 의료계 지침은 강제력이 없다.

◆논란 더 거세질 듯

정부는 이에 따라 이날 연명치료 중단 대상과 방식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긍정적이라는 점도 감안했다. 지난해 6월 리서치앤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3%가 연명치료 중단을 찬성했다. 환자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 경제적인 부담 등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입법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명칭부터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안락사 존엄사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 말은 생명연장을 적극적으로 중단시킨다는 의미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쓰는 순간 종교계가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쟁점도 다양하다. 사회적협의체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한의학회는 6개월 이상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되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환자가 사전에 의사를 분명히 밝혔을 때만 허용하자는 의견과,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서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있다. 정부는 내년 초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뒤 본격적인 입법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