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출신 야심찬 정치인…1998년 대선부터 내리 당선
빈민층에 인기…미국과 지속 갈등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연임을 허가받은 우고 차베스(58) 대통령은 대선 승리로 향후 6년간 베네수엘라를 또 한번 이끌어 가게 됐다.

그는 이번 승리로 구 헌법 체제였던 1998년 12월 대선에서 이긴 것을 포함, 4선을 달성하게 됐으며 신헌법으로 불리는 1999년 '볼리바리안 헌법' 체제 이후로도 세 번이나 연달아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오르는 기록을 쓰게 됐다.

작년 쿠바에서 세 차례 암수술을 받으며 어둠의 그림자가 인생 후반에 드리우기도 했지만 대선 승리는 그에게 부활이라는 기회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1954년 수도 카라카스 남서쪽 시골마을인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어린 시절 화가와 야구선수를 꿈꾸던 평범한 어린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며 군인을 길을 택한 뒤로는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젊은 군 장교를 모아 정치그룹을 조직해 지도자로서 야망을 키워갔다.

차베스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주목을 받은 때는 1992년 2월 동료 장교들과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했을 때다.

그는 쿠데타가 무위로 돌아가자 "모든 것을 내가 홀로 책임지겠다"는 짧은 연설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전파했고, 이같은 유명세는 2년 후 감옥에서 석방된 뒤 정치인으로서 길을 걷는 데 힘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감옥으로까지 밀어 넣었던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1994년 3월 자유의 몸이 된 뒤로 한때 정치적 진로를 놓고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차베스는 세력 규합을 통해 힘을 키우면서 1998년 대선에서 빈민층의 전폭적 지지로 첫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기존 의회를 해산하는 '제헌의회' 전술을 성공시켜 만든 신헌법 하에서 2000년 대선을 치러 또 한번의 압승을 거뒀고 2002년 반대파들의 총파업과 쿠데타에서 살아남으며 2006년 대선에서 다시금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7년 대통령 연임제한 규정을 철폐하려고 국민투표라는 강수를 뒀다가 패배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2009년 국민투표에서는 승리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당시 국민투표 승리로 헌법에서 연임제한규정을 삭제해 이번 대선은 물론 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종신 대통령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14년간 집권해 온 차베스를 놓고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깊은 관계에 있는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대신 의료진을 대거 파견받아 무상의료를 확대했고, 각종 보조금 혜택도 민중들에게 돌려주면서 국민의 40%를 차지하는 극빈층으로부터 '위대한 지도자'라는 영웅같은 칭호를 받아왔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일 수 있는 배경에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가 자리하고 있다.

석유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빈민 퍼주기 정책에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외국 기업을 임의대로 국유화하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민영 언론사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기업 규제, 외환통제같은 정책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독재'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국민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온갖 악의적 비난을 퍼부으면서 갈등의 초점에 섰고, 국제적으로도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 쿠바와 적극 협력하면서 서방국가들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인식돼 왔다.

물론 이 같은 적대적 외교정책 이면에는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독자적인 남미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차베스는 4일 대선 캠페인을 마치는 자리에서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베네수엘라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악몽 같았던 암재발에 대한 공포는 향후 임기 동안 떨쳐낼 수 없는 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베스는 지난해 암투병 동안 수술 뒤 회복했다고만 밝혔을 뿐 자세한 병명이나 처했던 치료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정부 관료들마저 차베스의 병세를 숨겨 그의 건강상태는 '국가기밀 1호'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기도 했다.

(카라카스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