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만 0~2세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세 가지다. 소득 상위 30%는 보육료 일부를 부담하도록 했다. 소득수준별 차등지원이라는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또 보육료 지원 시간을 부모 여건에 따라 차등화하고, 자녀를 직접 기르는 부모에게는 양육보조금을 준다는 것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이 된 정책은 무상보육의 철회다. 소득 하위 70% 이하에게 영아 양육보조금을 주고 어린이집을 이용할 때 이를 보육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소득 상위 30%는 어린이집에 다닐 경우 양육보조금만큼을 부모가 부담해야 한다. 작년 말 구체적 준비 없이 갑자기 도입해 사회적 갈등을 불러왔던 정책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은 셈이다. 이 정책은 어린이집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려놓았다. 이로 인해 예산 부족이 발생했고, 결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재정을 분담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어린이집이 부족해 보육 기회를 상실하기도 했고, 개인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낸 전업주부들도 심리적 불편함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이번 개편안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무상보육 후퇴라고 비난하고 있다. 주었다 다시 빼앗는 것에 대한 부모들의 불만도 크다. 이미 정부가 정치권 등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영아 무상보육은 다시 작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준비 안된 전면 무상보육…사회적 갈등·재원 부족 불러

사실 상위 소득 30% 계층의 영아 보육료 부담은 가구 근로소득의 최대 6%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소득이나 조세부담률 수준으로 보아 무리라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육료는 적건 많건 가족 규모와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원된다. 보육 선진국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들도 조세부담률이 50%에 가깝지만 부모 부담금을 두고 있다. 스웨덴은 최대 평균 가구소득의 3%까지를 부모가 부담하며, 핀란드는 정부가 비용의 85%를 지원하고 부모가 약 15%를 낸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무상보육에 대한 욕구가 크다. 이는 무상보육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우리의 차이는 보편적 가족 지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가 하는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부모를 위한 보편적 현금 지원이 없고 육아휴직도 매우 제한적이다. 보육료 지원은 일반 부모들이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의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보육을 향한 열망이 강하고, 또 그만큼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무상보육의 또 하나 함정은 보육서비스 공급 구조다.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은 기본 인프라 구축부터 시작돼야 한다. 보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출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보육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공급한다. 보육서비스 공급 구조를 시장 위주에서 비영리 공공시설 위주로 바꿔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정책과 함께 추진하지 않는다면 무상보육을 실시해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

이번 개편안에서 무상보육보다 더 중요한 정책은 가구 여건별 차등 지원과 직접 자녀를 기르는 부모에게 현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부모들이 각자 여건에 따라 선택한 방법으로 자녀를 기를 수 있도록 지원체계도 다양하게 맞춰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는 보육정책이 부모의 근로 여부나 가정의 자녀보육 여건과 무관하게 12시간 종일제 보육 보장으로 일원화돼 있다. 내년부터는 모든 아동에게 반일제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고 부모의 근로, 가족 간호, 출산 등으로 일정 시간 이외에 추가적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는 장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보육정책이 추구하는 가치인 ‘보육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비로소 제도화할 수 있게 됐다. 보육서비스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면서, 또한 보편적 서비스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의 취업 등 보육서비스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 일부 국가는 부모의 근로를 기준으로 어린이집 입소 자체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보육 이용시간이나 지원 수준에 반영한다. 복지국가에서도 부모의 근로 등에 따라 보육시간을 차등화해 지원하고 있다.

부모에게 양육보조금을 배정하고, 어린이집을 이용하면 보조금을 보육료로 지급하게 한 정책도 부모의 자녀양육 지원을 다변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가정에서 자녀를 기르고자 하는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고, 어린이집 쏠림 현상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린이집 쏠림을 우려하는 것은 단지 재정적인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보육서비스의 질적 수준, 특히 보육교사의 전문성과 질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웨덴·핀란드도 부모가 일부 비용 부담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기르고자 해도 대부분이 핵가족인 가정에서 혼자 자녀를 돌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관 이용과 부모 직접 보육이 혼합된 서비스 유형을 개발해 다양한 선택이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매일 다니는 어린이집 이외에 1주일에 1~2번 반나절 정도 규칙적으로 다닐 수 있는 단시간 일시 보육시설도 있어야 한다. 어린이집 이외에 영유아프라자와 같이 부모들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가서 함께 또는 따로 활동할 수 있는 육아지원 이용시설도 필요하다. 자녀를 스스로 기르고자 하는 부모들이 자녀를 직접 기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발표된 양육보조금은 금액 수준에 변동이 없어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취약한 환경에 있는 아동의 경우 수당을 부모가 생활비로 쓰면 어린이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만 3~5세 유아에게는 부모가 직접 기르면 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부모가 근로를 중단하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결국 양육보조금은 영아 정책에 머물러야 한다. 내년부터 모든 유아는 국가가 창의, 인성 기본생활 습관을 강조해 제정한 누리과정 적용 대상이다. 누리과정은 사실상 의무교육 확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유아에게 양육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제도적 모순이다.

서문희 < 육아정책硏 기획조정실장 >

△고려대, 고려대 대학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대통령자문 고령화및 미래사회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문위원 △17대대통령인수위상임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