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혐의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심리미진"

부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시신없는 살인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심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보험금을 노리고 노숙인을 살해해 화장한 뒤 자신의 시신인 것처럼 속인 혐의(살인 및 사기 등)로 기소된 손모(42.여)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살인 혐의를 증거불충분으로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의 범행방법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돌연사 내지 자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데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흠이 있다"고 밝혔다.

손씨는 이혼,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다음 주변 사람이 찾지 않을 여성 노숙인을 살해한 뒤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를 받았다.

손씨는 2010년 6월16일 대구의 한 여성노숙자쉼터에서 김모(26)씨를 만나 자신을 부산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소개하고는 보모로 근무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김씨를 차에 태워 부산으로 향했다.

다음날인 6월17일 새벽 김씨는 손씨의 차 안에서 사망했으며 손씨는 이미 숨진 김씨를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서는 자기가 사망한 것처럼 접수했다.

손씨는 김씨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고 속여 검안의로부터 사체검안서를 받은 다음 시신을 화장해 부산 바닷가 등에 뿌렸다.

검찰은 손씨가 인터넷에 '사망보험금 지급', '메소밀(독극물) 냄새', '질식사' 등을 검색한 점, 김씨의 시신에 구토와 타액 과다 분비 등의 흔적이 있었던 점을 들어 독극물을 마시게 해 김씨를 살해한 혐의로 손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손씨는 자신이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했으며 인터넷에서 독극물 등을 검색한 것도 자살할 방법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가 자신의 차에서 숨지자 순간적으로 김씨가 자신인 것으로 꾸미면 보험금으로 빚을 갚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주장을 폈다.

1심 재판부는 손씨에게 김씨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했으며 김씨가 자살하거나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 김씨가 사망하기 전 함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 손씨인 점, 손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점 등을 들어 손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여러 간접 사실에 비춰볼 때 손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망경위와 범행방법, 범행을 입증할 물적 증거 등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김씨가 돌연사했거나 자살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손씨의 시신은닉 및 사기 혐의만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kind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