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085억원짜리 코미디다. 당초 7467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던 정부의 0~2세 전면 무상보육 예산이 5618억원이나 더 들어갔다니 말이다. 관련 예산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지난 24일 보육료를 소득하위 70% 가구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무차별적 복지비 살포에서 선별적 지출로 7개월 만에 정책궤도를 바꿨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혼선이 생기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격앙한 여야와 대선후보들은 즉각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 전면 무상보육이 지난해 4·11 총선에서 공약한 것이니 끝까지 시행하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가 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심의할 때 무상보육 예산 수정안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국회 권한을 동원해 전면 무상보육으로 원위치시키겠다는 것이다.

정치권 강압에 휘둘리는 정부

영혼이 없는 두뇌집단 공무원들이 정치권의 전면 무상보육 강압에 굴복한 것은 그렇다 치자. 정부의 소요 예산 추산치는 5618억원이나 빗나갔다. 애를 어린이집에 안 보내면 나만 손해라는 부모들의 인식에 7만명의 영유아가 어린이집으로 더 몰린 탓이라고 백보 양보해도 상식을 벗어난 추정이다. 이 정도를 예상하기 어려운 돌발변수로 돌린다면 궁색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나마 국제통화기금(IMF)이 거들어줬다. 정부가 전면 무상보육 정책의 방향을 틀기 나흘 전에 발표한 한국 경제 연례보고서를 통해서다. “한국은 선별적인 복지가 바람직하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한국 정부의 재정부담을 우려해 소득에 따른 선별적 영유아 무상보육에 지지를 보낸 셈이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회원국의 핫이슈에 대해 IMF가 권고한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여의도 국회 산하 예산정책처도 그렇다. 표 확보에 혈안인 의원님들의 눈치를 본다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전면 무상보육 시행 전에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짚었어야 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의회 소속 기구이지만 정부와 의회를 겨냥해 적기에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재정정책 및 관련 입법안에 대해 정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분석자료를 발표한다. 한국 정치권과 국회가 아무리 3류, 4류라도 CBO와 같은 최소한의 견제장치는 작동해야 한다.

미국은 의회예산국이 견제

더듬수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내년 총 예산안 342조원 중에서 복지 관련 지출을 약 100조원으로 책정했다. 복지비는 공짜가 아니라 국민 세금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며 허리띠를 졸라맨 채 곳간을 채워온 국민들이다. ‘우리도 한 번 신나게 나눠먹세’라는 달콤한 복지바람이 성장 에너지인 나라 곳간을 비우고, 국민들의 성장 의욕을 갉아먹지 않을까 걱정된다.

꼬마인간(Littlepeople) 헴과 호는 치즈가 어디서 생겼는지, 누가 창고에 치즈를 갔다놨는지 별 생각이 없었다. 치즈는 항상 창고에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날마다 창고를 찾아 치즈를 먹으면서도 치즈 재고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어느날 그들은 창고가 비었다는 사실에 기겁을 했다. “뭐야, 치즈가 없네, 없어. 도대체 누가 우리 치즈를 가져갔지. 이건 공정하지 않아.” 헴은 “누가 우리 치즈를 가져갔는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우겨댔다. 스펜서 존슨의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권의 인기영합적 복지 선심에 나라 곳간은 하루하루 비어갈 수 있다. 곳간이 크게 축나는 어느날 정치권은 국정조사다, 청문회다 온갖 법석을 떨면서 책임자를 가리자고 날을 새울 테고.

김홍열 국제부 차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