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역내 재정위기국들을 돕기 위한 구제기금인 유로안정화기구(ESM) 운용 규모를 2조유로(약 2900조원)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의 재정위기가 깊어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유로존 당국자들이 이 같은 내용의 구제기금 증액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조유로는 당초 예정된 기금 규모인 5000억유로의 네 배다.

슈피겔은 ESM 증액을 위해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이 재정위기국들의 국채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을 일정 부분 보전해주는 방식 등이다. 보유 국채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차입하는 방식도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ESM에 은행면허를 부여해야 한다. 하지만 독일 등이 여전히 ESM에 은행면허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어 이 방식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레버리지를 통해 증액하면 ESM은 회원국들로부터 추가적인 출자 없이 2조유로가량의 대출 여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핀란드 등이 ESM 증액에 반대하고 있어 증액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슈피겔은 전했다.

유로존이 ESM 증액을 논의하고 있는 것은 현재 기금 규모로는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벽으로 부족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3~2014년 스페인, 이탈리아의 자금조달 수요는 각각 4700억유로, 8000억유로에 달할 전망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위기가 심화되면 현 ESM의 대출여력으로는 위기를 진화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편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대변인인 마르틴 코트하우스는 24일 언론 브리핑에서 슈피겔의 보도에 대해 부인했다. 그는 “완전히 현혹시키는 보도”라며 “ESM의 최종 기금 규모에 대해 구체적인 숫자를 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