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불황이 회복되는가 싶더니 유럽의 재정위기 때문에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기변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기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경기변동은 자본주의 경제의 일상사라는 것이다. 피할 수도 없고 완화하기 위한 정책 또한 마땅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때로 경기변동, 특히 불황의 효용성을 말하기도 한다. 불황을 거치면서 비효율적인 기업이 걸러지고 경제의 효율성이 제고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황은 스스로 호황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호황의 경우에는 웬만큼 비효율적인 기업이라도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호황은 스스로 불황을 예비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경쟁과 시장원리를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기의 순환은 필연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경기침체는 인재적인 측면이 강하다. 적어도 경제의 관리 소홀이 불황의 깊이를 키운 것만은 틀림없다. 지난 시절 지나친 낙관론이 금융 감독의 부실을 불러옴으로써 금융위기를 자초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재정위기는 극단적인 고정환율제도라 할 수 있는 단일통화의 나쁜 효과를 간과한 결과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오랫 동안 불황이라는 단어에 매여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힘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매일 언론매체를 통해 듣고 있다. 긴 불황은 이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위 ‘묻지 마 범죄’와 되풀이되고 있는 성범죄는 이제 아동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아동 대상 성폭행을 정상적인 심성을 지닌 인간이 저질렀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혹여 불황이 길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언들이 일조한 측면은 없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불황이 깊어지면 자살과 범죄율이 높아지고 사회 분위기가 험악해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경제적인 불황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때인 것 같다.

이 나라의 국민 모두가 지쳐 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 불황의 기간을 단축하고 끝내기 위한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때다. 경기안정화정책의 효용성을 크게 믿지는 않지만 정부의 선택이 경제주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개입을 요구하고 싶다.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정부부채의 증가를 염려하는 것은 정책이 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정부부채는 세수도 증가하고 정부지출의 요구도 줄어드는 호황기에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불황의 깊이와 지속성을 볼 때 콜금리도 너무 높다. 금융통화위원회의 선문답 같은 회의결과 발표는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한다. 너무 한가롭다는 말이다.

부동산시장에 아직 존재하는 규제 또한 완화해야만 한다. 각종 세율을 낮추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또한 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LTV는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을 때 거품이 꺼짐으로써 금융회사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가격이 3억원인 아파트가 거품 때문에 6억원이 됐다고 하면 LTV를 50%로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거품이 꺼져 담보가격이 정상가격으로 복귀한다 해도 금융회사의 부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의 가격이 불황 때문에 2억원이 됐다고 할 때 LTV를 여전히 50%로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비이성적인 정책이다. 이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억제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꼴이다. 불황에도 LTV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정부당국이 아직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경기변동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불황은 결국 끝나고 호황이 오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제 희망을 이야기하자. 우리의 자식들을 불러 앉히고 도란도란. 희망은 자기최면을 일으키고 끝내는 자기실현적이라는 사실은 경제학의 핵심이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결국 봄이 멀지 않은 것이다.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