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코리아 해외서 '덤핑 전쟁'…플랜트 수주 '진흙탕 싸움'
지난달 중순 해외건설협회는 국내 4개 대형 건설사에 ‘해외공사 수주 질서 유지’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카타르에서 발주한 공사비 4억5000만달러(약 5100억원) 규모의 도로·콘크리트 구조물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국내 건설사들이 과당 경쟁을 벌이자 “상대를 비방하는 유포·음해 행위를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이들 건설사가 경쟁사를 비방하는 ‘블랙 메일’을 발주처에 보내고 있다는 첩보를 카타르 대사관에서 알려와 부랴부랴 중재에 나섰다”고 말했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해외 플랜트·토목·건축 공사에 뛰어든 국내 건설사의 이전투구식 과당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내 업체끼리 서로 헐뜯는 비방전은 예사고, 수익성을 맞추기 힘든 저가 수주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 업체끼리의 볼썽사나운 수주 경쟁을 빗대 현지에서 ‘코리안 워(Korean war)’라는 조롱 섞인 말이 유행할 정도다.

2010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W지역 및 S지역에 들어서는 가스플랜트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D사는 당시 발주 물량의 절반가량을 따냈으나 2등을 한 한국 업체와의 입찰가격 차이가 30% 가까이 벌어져 적자 시공 우려를 낳고 있다. 당시 이 업체가 따낸 프로젝트의 낙찰가는 대부분 발주처가 제시한 예정가의 45~53% 수준에 불과했다.

사우디에서 발주한 6억달러 규모의 비철금속 제련공장 공사를 지난해 5월 B사가 따낸 과정도 경쟁사 음해 행위의 대표적인 사례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C사가 우선협상자 자격을 따냈으나 때마침 C사와 관계된 그룹 비자금 사건 등이 언론에 터지자 경쟁사인 B사가 이를 발주처에 알려 최종 단계에서 계약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건설사들이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국내 시장 침체로 일감이 줄자 해외 수주를 통해 외형을 유지·확대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어서다.

이 같은 국내 건설사의 과열 경쟁으로 당초 예상액보다 공사 입찰가를 크게 낮추는 데 재미를 본 해외 발주처들이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악순환도 되풀이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업체별로 발전, 정유, 사회간접자본(SOC) 등 특화 분야를 집중 육성해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사를 따내려는 무리한 수주 행위에 제동을 거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선/김진수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