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중독 방지책은커녕 실태 조사도 없어
천문학적 수익 내는 제조사·통신사는 외면


기획취재팀 = "스마트폰 중독은 알코올, 마약 중독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경북 안동에 사는 장 모(여·34) 씨는 최근 초등학교 1학년인 쌍둥이 딸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다.

방과 후 학원 수업으로 귀가가 늦은 아이들에게 비상상황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사준 스마트폰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들은 모바일 메신저와 게임에 무섭게 빠져들었다.

밤낮 구분도 없었다.

자연스레 책을 읽거나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은 줄었다.

데이터 사용량을 최소화한 요금제도 효과가 없었다.

무선인터넷(Wifi) 공유기가 있는 친정 집이나 아이들 친구 집이 '스마트폰 방'이 됐다.

스마트폰 사용 3개월여 만에 아이들의 시력은 급격히 나빠졌고 두 딸 중 하나는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채 길을 걷다 충돌사고로 크게 다칠 뻔했다.

장씨는 "스마트폰을 빼앗긴 아이들은 한동안 심하게 조르고 떼를 썼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의 금단현상과 다름없어 보였다.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준 부모들은 대부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면서 편리하고 재미있는 '스마트 세상'을 열었다지만 부작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과도한 몰입과 중독은 사용자 자신의 정서와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이용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면서 이용자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은 그동안 개발된 어떤 기기보다 과도한 몰입과 중독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최근 조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에는 어른, 아이 구분도 없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서울·경기 지역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3~5세 유아 252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5.1%는 아이가 매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주일에 3~6회 사용한다는 응답자도 23.4%에 달했다.

영유아 10명 가운데 4명은 주당 적어도 3차례 이상 스마트폰을 쓰는 셈이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이용 행태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휴대전화 전문 조사업체인 마케팅 인사이트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스마트폰 사용시간 중 음성통화 비중은 37%에 불과했고, 음악·동영상·게임(24%), 문자·메신저(21%), 무선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 사용(18%) 등이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눈과 귀, 손가락까지 사용하는 방식으로 휴대전화 이용 행태가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청각 이외에 시각까지 스마트폰에 빼앗긴 사용자들이 도심 곳곳에서 '곡예 보행'을 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런데도 과도한 스마트폰 몰입, 중독을 예방하려는 노력은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양청삼 네트워크윤리팀장은 "올 초부터 정책대응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내년 예산배정도 신청했으나 아직 본격적인 논의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보행 중 또는 자전거 운행 때 스마트폰 사용 행위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법적 규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인구 대비 세계 1위다.

따라서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며 "최소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훈시규정이라도 만드는 등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행안부 관계자는 "스마트폰의 안전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법적 제재를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반발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스마트폰 산업의 급성장으로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는 단말기 제조업체나 통신사들도 '편리한 기능', '빠른 속도', '다양한 콘텐츠' 등을 내세워 소비를 부추기는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 애플, LG전자, 팬택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와 이동통신 3사 가운데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중독에 관한 교육과 캠페인을 하고 있거나 계획한 업체를 찾기는 어렵다.

KT가 전국 30개 학교에서 '중독 예방 및 건전한 사용문화 확산'을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게 사실상 전부다.

스마트폰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중독의 책임을 소비자에게만 전가하려는 업계 전반의 인식은 더 큰 문제다.

애플 코리아 관계자는 "스마트폰은 잘 쓰면 전화기지만 잘못 쓰면 음란물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라며 "우리는 앞선 기술을 개발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할 뿐, 과도한 몰입과 중독 예방 활동은 우리 몫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의 한석현 팀장은 "교육이나 캠페인을 통해 몰입이나 중독이 100% 해소되지는 않지만, 이런 교육을 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라며 "스마트폰 사업으로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들이 최소한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윤철한 국장은 "스마트폰이 생활의 일부분이 되면서 과도한 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특히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몰입과 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에 스마트폰 업계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연합뉴스)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