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이 국내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전경련이 매출액 상위 1000개 기업 중 해외사업장을 가진 274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유턴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업체는 실망스럽게도 딱 한 곳뿐이었다. 공장설립 규제를 비롯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출자총액 제한제도 재도입 추진 같은 기업규제를 이유로 꼽은 업체가 절반에 육박했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있는 지역에서 생산거점을 유지 또는 확대하겠다는 업체가 86%를 넘고, 12%는 사업장을 옮기면 제3국으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열심히 사업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에선 기업할 맛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의욕상실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최근 청와대에서 5대 그룹을 대표하는 사장들을 불러 투자를 독려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던 것도 그렇다. 설사 일부 기업이 투자를 늘리겠다고 했어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의전용 멘트 정도로 들었을 게 틀림없다. 주요 그룹들이 예정했던 투자를 줄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정치권이 경제 민주화라는 허상을 실현하겠다며 쥐몰이하듯 기업을 잡겠다는 법안을 만들려드는 상황이다. 순환출자를 깨고 출총제를 부활시키기만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것처럼 선동이 판치는 것도 그렇다.

순환출자 해소에만 수십조원이 든다는 분석이지만, 어떻게 투자하고 수출을 늘려서 성장을 지속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성장동력이야 꺼지든말든 시장을 잘게 쪼개 중소기업에 넘기고, 대기업이 번 돈을 강제로 나눠 쓰자는 식이다. 그룹을 파괴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라며 선심을 쓰듯하는 형국이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이 엊그제 전경련 제주포럼에서 경제 민주화를 표방한 법안들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정치권 공약대로 하면 우리 경제는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정치권이 경제를 정치화해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경제학자의 지적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밑에서 경제가 꺼지는 줄도 모르고 절벽으로만 질주하는 정치권이다. 유럽위기는 일과성이 아니라 장기불황으로 갈 것이란 전망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미 대기업들은 장기불황에 대비해 현금 보유를 늘리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허리역할을 하는 중견기업들은 성장동력이 한계에 왔다고 하소연하는 상황이다. 기업 의욕 상실이 돌이키기 어려운 임계점을 넘어설 수도 있다.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