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원 석유공사 사장, 자진사퇴 '강수'…사표 수리 안됐는데 15일 퇴임식 갖고 물러나
최근 임기 만료를 두 달여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한 강영원 석유공사 사장(사진)이 결국 15일 퇴임식을 갖고 물러난다. 공기업 사장이 청와대의 최종 사표 수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퇴임식을 강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관가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14일 지식경제부와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말 홍석우 지경부 장관에게 사의 의사를 전달한 뒤 이달 1일부터 휴가를 떠났던 강 사장은 15일 안양 본사에서 회사 간부들만 참석한 가운데 약식으로 퇴임식을 갖는다. 그는 당초 13일 휴가에서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주말 휴가 기간을 1주일 더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사장은 퇴임식을 가진 뒤 18일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출국한다.

지난해 한 차례 연임한 강 사장의 임기는 오는 8월18일까지다. 강 사장이 정부의 사표 수리를 기다리지 않고 자진 사퇴라는 강수를 둔 데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강 사장 스스로는 “4년 동안 피로가 쌓였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최근 논란이 벌어진 감사원의 ‘해외 자원개발 실태’ 감사 결과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가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해외 자원개발 감사 보고서에서 석유공사가 캐나다 석유개발 회사인 하베스트를 인수하면서 실제 자산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4년간 19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며 자주개발률을 높였지만 정작 국내로 직접 들여온 원유가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했다.

이런 감사 결과가 영향을 미치면서 석유공사는 지난 13일 발표된 경영평가(작년 실적 기준)에서 꼴찌 바로 위 등급인 ‘D’를 받았다. 작년보다 두 계단 떨어진 것이다. 평가 원칙에 따라 석유공사 임직원은 올해 성과급을 받지 못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영국 다나페트롤리엄 인수, 아부다비 미개발 유전 개발권 획득 등 석유공사가 거둔 굵직한 성과는 고려하지 않은 채 감사원과 공운위가 비현실적 잣대를 들이대며 공사 이미지를 실추시킨 데 대해 강 사장이 자진 사퇴라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최근 관가에서는 감사원의 행태에 대해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공기업은 물론 정부 부처까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반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도 민간 기업에 대한 특혜 대출과 암바토비 광구 지분 헐값 매각을 지적한 감사 결과에 대해 지난 8일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광물공사 관계자는 “합리적인 경영 판단을 마치 비리가 있는 것처럼 (감사원이) 몰아붙였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주유소 나눠먹기’ 담합 혐의로 적발된 주요 정유사에 과징금을 축소 부과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판단 여하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을 일방적으로 부당 감면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곤란하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매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한 재심 청구 건수와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 비율(인용률)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무리한 조사와 발표로 해당 기관과 공무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