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민주화'는 5共 독재가 위장용으로 내세운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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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 질서가 가장 공정한 체제…사회적 약자는 선별적 복지로 보호
한국경제연구원이 19대 국회 개원을 코앞에 두고 4일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연말 대선을 겨냥,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내세운 각종 정책을 이번 국회에서 쏟아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사전에 이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토론회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오용되고 있으며 태생적으로 한계가 분명한 개념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정치권이 여러 정책을 경제민주화로 포장하는 것은 정당성이 약한 자신들의 철학이나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지극히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시장이나 기업활동에 각종 규제를 들이댈 때마다 내세운 게 바로 경제민주화다. 지난해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라는 당내 기구를 발족시키면서 또 한 차례 논쟁이 달궈지기도 했다. 우리사회 경제민주화 논쟁의 뿌리는 우리나라 헌법에 있다. 경제 부문을 다루고 있는 헌법 제9장(119~127조)을 보면 왜 우리 사회에서 이 논란이 끊임 없이 제기되는지 알 수 있다.
119조2항은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에 의한 규제와 시장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조항이다. 123조에서는 농업과 어업 중소기업 보호 육성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출총제와 순환출자금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근절, 불공정하도급 근절, 중소서민 상권침해 제한, 재벌총수 횡포방지 등등의 수도 없이 많은 규제정책들은 모두 이들 헌법 조항을 근거로 댄다.
우리 헌법이 이런 조항을 두게 된 것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이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정책적 조항을 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헌법에 이념이 침투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헌법이 농업 어업 중소기업과 같은 특정 집단을 위해 국가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처분적 입법의 형태를 띠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현행 헌법의 태도는 ‘법은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근대 입법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종종 받는다. 더욱이 119조2항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초조해진 5공화국 독재정부가 내부 권력 승계를 위한 일종의 위장책으로 개헌을 하면서 삽입한 조항이다. 이런 헌법 조항들이 바로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이념적 혼선을 빚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수 헌법학자들이 이들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유시장 질서에 맞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물론 지금의 헌법하에서도 정부가 마구잡이식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 119조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119조2항을 앞세우지만 1항은 경제의 기본원칙을, 2항은 예외 혹은 보충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사실 시장경제원칙만큼 경제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시장규칙이 아닌 그 어떤 규칙도 공정하게 자원을 배분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뭔가 정부가 나서서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민간경제 활동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원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부 개입은 거의 예외 없이 시장기능을 정지시키고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을 마비시키며 결과적으로 경제민주화를 가로 막는다. 그런데도 정부가 폭력에 의해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망가뜨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자유경제질서가 도전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