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라지는 서울의 상징 '해치'
서울 광화문광장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연결하는 지하광장은 하루 유동인구가 20만명에 이를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의 이름은 ‘해치광장’. 서울시가 2009년 서울의 상징으로 ‘해치’를 선정하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해치는 선악을 구별하고 정의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 ‘해태’의 원말이다. 당시 시는 해치를 캐릭터로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문화상품화에 나섰다. 해치 기념품점도 열었다.

그런데 내년부터 이 기념품점이 사라질 운명이다. 시가 다음달부터 해치 상품화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 관계자는 “사실상 지난해 말부터 해치 상품화 사업은 대부분 중단됐다”며 “다음달부터는 완전히 사업을 접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치 상품화에 투입한 예산은 20억여원에 달한다. 디자인을 강조했던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 브랜드를 ‘해치’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울 곳곳에 해치상을 설치하고, 해치 캐릭터 상품 및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취재수첩] 사라지는 서울의 상징 '해치'
하지만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이유가 뭘까. 시 관계자는 “박 시장 취임 이후 시민단체 등이 해치 사업을 대표적인 낭비성 홍보라고 비판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시장 스스로도 해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해치 관련 예산은 지난해 2억1600만원에서 올해 7000만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시가 해치를 비롯해 시의 대표 브랜드인 ‘하이 서울(Hi Seoul)’ 등도 퇴출시킬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시 관계자는 “서울의 브랜드를 바꿀 계획이 아직까지는 없다”면서도 “일부 브랜드들이 통일성 없이 무분별하게 혼재돼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의 설명대로 낭비성 홍보예산이 있다면 줄여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전임 시장의 브랜드 관련 예산을 모두 ‘낭비성 홍보’라고 깎아내린다면 ‘전임자 지우기’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도 있다. 시민 80% 이상이 ‘서울의 상징은 해치’라고 응답한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정치적 득실을 떠나 전임자 때의 브랜드를 후임자가 계승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