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의 첫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44)는 몸을 비트는 투구폼으로 토네이도란 별명을 얻었다. 노히트노런을 두 차례나 기록했고 팀 동료였던 박찬호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아시아 출신 최다승(123승) 보유자였다. 그런 노모도 일본에선 한때 조국을 배반한 ‘변절자’로 불렸다. 욕설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 변절자라는 낙인은 치명적인 모독이다. 하지만 노모가 그해 신인왕, 올스타, 탈삼진 1위를 기록하자 비난이 찬사로 바뀌었고, 은퇴한 지금은 메이저리그 개척자로 불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외수 진중권도 종종 변절자란 비난을 듣는다. 이외수에 대해선 4·11 총선 때 한 여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 여전히 앙금으로 남은 모양이다. 진중권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관해 보수언론이 좋아할 소리만 한다는 이유다.

변절(變節)의 사전적 의미는 ‘절개나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꿈’이다. 배신 배반과 비슷하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그동안 가졌던 신념 생각을 바꾸는 게 변절이라면, 배신 배반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다. 변절의 반대편에 지조(志操)가 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자유당 말기에 발표한 ‘지조론-변절자를 위하여’에서 변절을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단,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천선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이라고 부연했다.

조지훈의 관점으로 보면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은 변절자가 아닌 민족반역자로 봐야 한다. 시종일관 황국의 신민이 되길 원했으니까. 원조 주사파에서 북한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김영환이나 하태경이 눈엣가시 같기에 주사파들은 변절자의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이들은 뒤늦게 북한의 참상에 눈을 떠 자성하고 생각을 바꾼 전향이지 변절이 아니다.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폭언 파문이 일파만파다. 탈북 대학생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 국회의원한테 개겨”라고 윽박지르고,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을 “변절자 ××”라고 했다. 임 의원이 취중에 흥분했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과거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부른 전력까지 새삼 연상시킨다.

우리 속담에 ‘사람을 보려면 그 후반을 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오도된 신념에 한쪽으로 기울 수는 있지만, 나이 먹고 신념이 틀렸음이 입증됐어도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술 탓이라면 이런 영어속담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술은 변절자다. 처음엔 친구가 되고, 나중엔 적이 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