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5000년 역사’라고 한다. 그 가운데 3000년은 기록이 없어 알지 못한다. 기록은 대략 2000년 전부터 시작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기록의 시작이다. 단군신화도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그밖에 잡다한 고기(古記)라는 것들은 대부분 신뢰하기 어렵다.

기록에 남은 그 2000년 역사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를 위인과 영웅은 과연 몇이나 되는가. 현존하는 지구상 국가 가운데 우리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도 드물지만, 그만한 역사에서 우리만큼 섬기는 위인과 영웅이 없는 경우도 희귀하다. 선조가 문제인가, 후손이 문제인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영웅은 모두 후대가 만든다. 삼국사기에만 해도 수십 명의 위인과 영웅들이 나온다. 아마 이웃나라 일본 같으면 신사 하나쯤은 차려놓고 철마다 참배객이 꼬리를 물었을 급수의 위인들이 그야말로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조들을 찾아서 섬기지 않는다. 섬기기는커녕 그런 인물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국가적인 위인과 영웅이 없다는 것은 등불 없고 이정표 없는 밤길을 달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뼈대 있는’ 집안의 후예들이 전통과 근본을 백안시하는 것인지 모른다.

생자필멸(生者必滅) 국가필망(國家必亡)이다. 안 죽는 사람 없듯이 안 망하는 나라 없다. 국가도 공동체의 가치가 다하면 무너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대한민국 역사는 얼마나 갈까? 앞으로 100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뒤 한반도에는 어떤 나라가 있을까? 그 나라에 사는 우리 후손들은 지금 우리가 삼국이나 고려 역사를 배우듯이 책에서 대한민국을 배울 것이다. 그들의 눈에 우리 모습은 또 어떻게 비칠까?

선조에게 물려받은 통일국가를 1300여년 만에 다시금 둘로 갈라놓고, 이미 반세기 이상을 철천지원수처럼 죽이고 싸워온 게 역사책에 기록될 남북한의 모습이다. 지금이야 사안에 따라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역사의 무게가 실리면 분단사 전체가 후손들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할 공산이 크다. 유구한 한민족사에서 이만큼 어리석고 미련하면서도 야만적인 오점(汚點)이 다시 있을까. 게다가 그 부끄러운 ‘양한(兩韓)’의 역사를 가르치는 1000년 뒤 교과서에 북한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주적인 독자 노선을 고수하며 세계 열강들과 당당하게 대적한 자랑스러운 집단으로, 남한은 온갖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압박한 집단으로 묘사한다면 어떨까? 잘 알아보려 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1000년 전의 역사 평가에 비슷한 우(愚)를 범하고 있으니 우리 후손들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역사를 모르면 현실을 바로 보기 어렵다. 과거와 현재는 기다란 끈으로 연결된 동체(同體)이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은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그런데도 근년에 우리는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만끽하고 지나칠 정도로 민주와 정의, 평화를 사랑한다. 젊은 층은 암울한 분단국가의 장래를 책임질 사람들로 보이지 않고, 심지어 분단국 국민으로서 고뇌조차 없는 듯하다. 무언가 근본이 무너지고 있는 듯한 상황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유일한 분단국가라면 그에 걸맞게 국가의 모든 분야에 분단이란 전제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분단국가의 청년이라면 총칼도 없고, 미사일과 핵무기도 없는 저 지중해 어느 연안의 한가로운 나라 후손들과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래서 통일은 누가 하는가? 치욕적인 이 한민족의 수난기는 도대체 언제, 누가 끝낸단 말인가!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노라면 기성세대라고 별반 나을 것도 없어 보인다. 나라의 제도와 법률도 분단이라는 현실을 잊은 것 같다. 국가권력이 왜 있는가? 분단을 망각한 정치세력이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가? 잘살고도 하루아침에 가난한 나라에 망한 국가는 헤아릴 수 없이 허다하다.

역사를 알면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 있지 않는다고 했던가. 무너지는 담장 아래 구태여 가겠다면 역사를 모르는 것이고, 무엇이 무너지는가를 보지 못한다면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