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미리 자동차 값을 내렸는데, 다시 올려야 할지 고민입니다.”(A자동차수입업체 대표)

야권이 한·미 FTA 발효 절차 중단을 올해 총선과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나서자 자동차업계가 황당해하고 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는 한·미 FTA 발효 시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수입관세가 8%에서 4%로 낮아지는 것을 감안해 지난해 말부터 차값을 2~3% 내렸다. 크라이슬러 관계자는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통과한 것을 축하하고 고객들과 혜택을 나누기 위해 미리 가격을 인하했는데,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 줄은 몰랐다”며 “발효가 지연되면 그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사업계획을 다시 짜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입차의 가격 공세에 맞서기 위해 덩달아 할인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올 들어 배기량 2000㏄ 이상 차에 대해 개별소비세분만큼인 차값의 2%를 인하했으며, 할인 기간은 한·미 FTA 발효시점까지다. 이를 통해 그랜저(HG), K7, 에쿠스 등 중대형 차종의 경우 100만~250만원가량의 할인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판매조건에 개별소비세 지원을 한·미 FTA 발효 시점까지로 표기했기 때문에 발효가 지연되면 가격 인하를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시트, 안전벨트, 헤드라이트 등 내장재를 납품하는 부품업계도 골치를 앓고 있다. 한·미 FTA에 대비해 전담반을 마련하고 해외진출 방안을 검토했지만 자칫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자동차 내장재를 생산하는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위해 국제무역거래법 등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통상지원팀을 구성했는데 한·미 FTA가 폐기된다면 파장이 클 것”이라며 “다른 부품업체들도 품질,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수입차 딜러는 “미국 거래처에서 뉴스를 보고 한·미 FTA가 무산되느냐는 문의전화가 수십통 왔다”며 “이런 방식으로 FTA를 폐기하려는 나라는 아직 없는 만큼 국가적 신인도 하락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예진 산업부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