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 to Head] 기득권 버려야 시장경제도 지켜…한국 '자본주의 5.0' 으로 가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진화를 통해 다른 체제와의 경쟁에서 이겨왔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무라 해도 해마다 조금씩 자라지 않는다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다.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원리이고 본질이다. 자연의 이치는 사회에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국가나 제도도 경직되면 쇠퇴하고, 기득권을 지키려하면 종말을 맞게 된다.

먼저 영국 보수당의 사례를 살펴보자. 왕실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귀족정당으로 출발한 보수당이 어떻게 300년 동안 경쟁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살아남았을까?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변화와 개혁이 필요할 때는 과감히 받아들이는 유연성과 자기개혁에 그 해답이 있었다.

물론 기존 지지자들이나 기득권층의 저항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영국 보수당은 지지자들로부터의 배신자라는 손가락질도 감수하며 과감하게 변신했고, 재집권에 실패할 경우에는 경쟁 정당의 정책도 끌어안아 자기화하는 파격과 유연함으로 거듭 힘을 되찾았다.

중국이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막대한 내수 시장의 도움이 컸지만, 그보다는 공산당의 체제변화가 선행됐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 이름만 빼놓고 모든 변화를 추진했고 그 결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못지않은 경제적 성과를 이뤄냈다. 실제 중국 공산당의 덩샤오핑은 실용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장쩌민은 배척 대상이었던 자본가를 당원으로 흡수한 뒤 공산당이 노동자, 자본가, 농민, 지식인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고 천명했다. 이들 정책 모두 공산주의 이론을 벗어나는 혁신적인 변화였다.

[Head to Head] 기득권 버려야 시장경제도 지켜…한국 '자본주의 5.0' 으로 가야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고정된 형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요약되는 ‘고전적 자본주의’는 1920년대 말 대공황 이후 혜성과 같이 나타난 케인스에 의해 정부가 전면에 나서 경제를 책임지는 ‘수정자본주의’로 대체됐다. 이 당시 변화와 개혁을 하지 못했던 국가들은 체제가 전복되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됐다. 1960~1970년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치열한 체제경쟁을 했다. 자본주의는 기업의 이윤추구 등 시장의 자율성과 파이를 키우는 ‘자유자본주의’로 맞섰고 사회주의는 소유와 이익의 공유를 내세우며 선명성 경쟁을 했다. 1990년대 체제경쟁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후 ‘자유자본주의’는 또 한번 변화했다. 소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자본주의 4.0)’로 진화한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때 자본주의 4.0으로의 전환을 좌클릭이니 반시장적이니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오히려 한국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기본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즉 정부와 기업 간 역할의 경계가 모호한 ‘자본주의 4.0’에서 시장의 공익적 기능을 더욱 강조하는 ‘자본주의 5.0’ 시대로 진화해야 대한민국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다.

이제 시장보다 강한 정부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업의 힘이 특히 세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와 달리 지금은 경제를 이끄는 힘에서 기업이 정부를 압도한다. 정부 전체 예산 중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불과 10조원 정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공익과 복지를 모두 챙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에 비해 한 기업의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이 넘는 곳이 있으니, 정부와 기업의 힘의 균형이 어떠한지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따라 늘어나는 복지재원 부담으로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은 더욱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청년일자리 문제도 공공부문 고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는 턱없이 작다. 사회 문제와 갈등 해결에 있어 기업 등 민간부문 역할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이유다.

기업 역할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5.0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 1970년대의 체제 경쟁이 종료된 이후 진화된 자본주의에서는 나눔, 배려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매우 강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1960~1970년대식 자본주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막강한 부를 이용하는 ‘부(富) 주도경제’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부 주도경제는 스마트 시대의 도래에 따라 형성된 생태계 간 경쟁 상황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따라서 기득권층이 기득권에 안주하는 따분한 보수에서 벗어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고 변화와 개혁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유지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앞장서는 ‘쿨(cool) 보수’가 돼야 한다.

국민 모두는 우리나라 대기업에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모여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인 전경련이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가장 힘센 곳이 이익단체까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대기업을 제대로 대변하는 단체라면 기득권 지키기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진화와 체제유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 1960~1970년대 대기업의 오너들은 벤처사업가였다. 그 당시 자동차, 전자, 철강, 화학 등 가장 어려운 사업에 도전했다. 이 창업자들이 지난 30~40년간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대기업이 다시 한번 다른 사회구성원은 하기 힘든 어려운 분야에 진출해 우리나라를 30~40년간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내야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믿는다. 하지만 경직되면 죽음이다.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결실을 나누는 것.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Head to Head] 기득권 버려야 시장경제도 지켜…한국 '자본주의 5.0' 으로 가야

■ 곽승준 위원장

△고려대 경제학과 △밴더빌트대 경제학 박사△고려대 교수 △대통령실 국정기획 수석비서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