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뒀던 자전거를 다시 타는 느낌입니다.”

차인태 전 MBC 아나운서(68)에겐 올해가 남다르다. 32년간 방송경험을 토대로 10년 동안 후학양성의 길을 걸어온 그가 암투병을 끝내고 다시 대학 강단에 서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문예분야 특성화 사이버대학교인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올 봄학기부터 발음과 발성, 한국어 교육을 맡게 된다.

차 교수는 2009년 10월 “폐와 심장 사이에 악성 림프종양(암의 일종)이 생겼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1년 반 동안 9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는 지난달 30일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병실로 찾아온 딸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죠. 연약해진 아버지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항암치료가 3~4차에 이르렀을 때는 몸이 쇠약해져 거동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입맛도 없었고 잠도 편히 잘 수 없었죠. 혈압이 60에 40까지 떨어져 중환자실에 격리됐을 땐 ‘사람이 떠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침전 속에 반전이 있었던 것일까. 괴로운 치료가 계속되다 보니 “상황에 순명하겠다”는 생각이 들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언젠가는 터널 끝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도 샘솟았다. 결국 항암치료를 무사히 끝냈다. 퇴원한 뒤 친구를 만나러 나가기 위해 와이셔츠를 입고 단추를 채우며 그는 울었다. “야, 차인태! 중환자실에서 꼼짝 못하던 네가 셔츠 단추를 혼자 채웠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는 지난해 3월 항암치료를 끝내고 한 달 뒤인 4월부터 OBS 토크쇼 ‘명불허전’ 진행을 맡아왔다. 지난해 여름엔 교수로 일해달라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의 요청을 수락했다. 요즘 연극영화학과, 한국어문화학과, 사회복지학과 등에서 강의하기 위해 수업 준비에 힘쏟고 있다.

차 교수는 1966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 MBC로 옮긴 후 30년가량 이 방송국에 몸담았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17년간 그가 진행을 맡았던 ‘장학퀴즈’는 당시 모든 중·고등학생의 필수 시청 프로그램이었다. MBC 아나운서실장(1989년)과 편성이사(1993년), 제주MBC 사장(1995년)을 지낸 뒤 1998년 방송계를 떠나 후학양성의 길을 걸었다.

요즘 그는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나가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암은 재발 가능성이 높은 병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설령 재발한다고 해도 허둥대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병마와의 치열한 전투 경험을 통해 얻은 순명하는 그의 자세는 현재진행형이다. 투병생활은 그에게 나눔의 소중함도 가르쳤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데 나 혼자 움켜쥐고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능력이든 재물이든 나눠야 남습니다. 대단한 지혜가 있어도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의 올해 목표는 ‘훨훨훌훌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구체적 목표도 없이 그냥 ‘훨훨훌훌’이다. 목표는 그 자체가 구속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하지 않았다. 순명해서 마음이 가볍고 나눠서 주머니가 가벼우니 금방이라도 날아갈 태세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