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BMW 따라잡겠다"···프리미엄 브랜드化 시동

현대자동차가 BMW와 디자인 작업을 했던 크리스토퍼 채프먼을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디자인 경영'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현대차, 디자인으로 승부건다…BMW 출신 채프먼 영입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2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북미디자인센터의 수석 디자이너로 BMW X시리즈 등의 디자인에 참여한 크리스토퍼 채프먼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현대차는 YF쏘나타를 만든 주역인 필립 잭이 올 초 제너럴모터스(GM)로 복직한 뒤 1년 가까이 공석으로 남았던 자리의 후임을 찾아왔다. 디자인 영역이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으로 대두되면서 선진업체의 디자이너 영입이 핵심 과제였다.

현대·기아차가 외국인 디자이너를 영입한 사례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2003년 현대차 미국디자인센터의 수석 디자이너로 조엘 피아스카우스키를 영입한데 이어 2006년에는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부사장을 디자인 총괄로 스카웃했다. 이후 6년간 일해온 피아스카우스키가 2008년 사임한 후 필립 잭이 그 자리를 대신해왔다.

현대차는 필립 잭이 구상한 디자인 코드 '플루이딕 스컬프처(유연한 역동성)'를 통해 해외시장에서 큰 효과를 봤다. 이를 적용한 YF쏘나타와 아반떼MD가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 브랜드 인지도를 격상시켰고, 판매도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특히 미국의 20~30대 젊은 운전자들 사이에 날렵하고 스포티한 현대차 디자인이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올해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에서 사상 첫 밀리언셀러(100만 대)를 기록했다.

기아차도 아우디 출신 피터 슈라이어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한 후 승용차 라인업 K시리즈와 '호랑이코' 패밀리룩을 탄생시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K5, 모닝, 스포티지 등 주요 모델이 굿디자인, 레드닷 디자인, iF디자인 등 해외 유명 디자인상을 잇따라 타는 쾌거를 거뒀다.

채프먼 역할은?···현대차 고급 브랜드 만들기

현대차가 새롭게 영입한 크리스토퍼 채프먼은 지금의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급 차종의 디자인 작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고급 브랜드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선 '모던 프리미엄(Mordern Premium)'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향후 프리미엄급에 해당하는 차종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3년께 지금의 제네시스 쿠페를 뛰어넘는 프리미엄 스포츠세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BMW 3시리즈를 경쟁 차종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현대차 디자인이 좋은 평가를 얻고 있으나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선 현 시점에서 디자인 업그레이드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BMW 출신의 크리스 뱅글 영입을 시도했던 현대차가 예전부터 BMW자동차의 디자인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는 평가다. 특히 유럽형 디자인으로 방향을 잡은 기아차는 폭스바겐을, 미국이 최대 시장인 현대차는 BMW를 역할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장진택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기아차가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아우디나 폭스바겐 같은 차에 근접했듯이 현대차도 BMW와 같은 브랜드가 되길 꿈꾸고 있을 것" 이라면서 "현대차가 굳이 BMW 출신을 영입한 것은 미국에서 성공한 고급차 메이커 대부분이 유럽 메이커인 점을 감안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자동차 디자인 작업은 단순히 선진 업체를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 흉내낼 수 없는 전문가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면서 "자동차 철판 모양을 만든다거나 실내 인테리어 구성은 모방으로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전문지 오토타임즈의 권용주 팀장은 "현대차가 BMW 출신의 채프만을 수석디자이너로 영입한 전략은 미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가기 위한 전초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