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한중관계 현주소와 극명한 대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인 혈맹관계를 한층 과시하는 양상이다.

반면에 수교 20주년을 불과 며칠 앞둔 한중관계는 천안함·연평도사태에 이어 북중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현실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일 북한의 김 부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공산당중앙위원회 등 4개 기관 명의로 조전을 보내 "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전진할 것으로 믿는다"며 김정은 영도체제를 인정하는 입장을 신속히 밝혔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20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등을 이끌고 주중 북한대사관내 조문소를 찾은 데 이어 21일에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 등 정부 수뇌부가 북한대사관을 방문함으로써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애도행렬에 동참했다.

조전(19일)을 시작으로 후 주석(20일), 원 총리(21일) 등이 사흘 연속으로 '조문외교'를 통해 북중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한 셈이다.

특히 후 주석은 20일 조문에서 "우리는 조선 인민이 김정일 동지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김정은 동지의 영도 아래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김정은 영도'를 직접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새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중국의 발빠른 행보는 북한의 급변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해 대북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적 지원에 북한도 중국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 사망발표 이후 중국의 조전이나 조문을 가장 우호적이고 비중있게 전하고 있다.

북한이 김 위원장 변고(變故)를 중국에 사전통보했다는 얘기도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높아 보인다.

일부 언론은 최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외교채널을 통해 '중대사건'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이 17일 지재룡 주중대사를 급거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유고상황을 중국에 흘렸거나 류훙차이(劉洪才) 주북 중국대사가 상황을 파악해 '첩보보고' 하도록 도움을 줬을 수도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중국의 도움을 받아 `김정은 체제'의 조기안정을 기하려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사전통보'를 중국 측에 선물로 줬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북중간 이 같은 밀월 조짐에 대해 이관세 전 통일부차관은 "중국이 북한의 권력승계를 지지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선제조치로 보인다"며 "후 주석의 '김정은 영도체제' 언급도 북중 양국간 후계문제 협의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중간 '조문외교'를 통한 유대 강화는 현재의 한중 관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 김 위원장의 사망발표가 이뤄진 19일 오후 2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로 긴급대책을 논의했지만 후 주석은 통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천안함·연평도사태, 서해상 해경 피살 등의 처리 과정에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인 한국을 노골적으로 홀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duckhw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