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反서민'과 '沒염치' 사이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치고 받았다. 서울 재건축 사업에 대한 ‘공공성 강화’를 놓고서다. “주택 공급이 줄어 서울시민을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반(反) 서민’ 정책”이라는 권 장관의 지적에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염치가 먼저다. 그게 상식”이라고 맞받았다. 감정 싸움으로까지 비쳐지는 모양새다.

이들의 대립 포인트는 ‘주택공급 확대(권 장관)’와 ‘서민 주거안정(박 시장)’이다. 부동산 시장에선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집값은 올라도 문제, 내려도 골칫거리다. 상승하면 내집마련의 꿈이 멀어진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하락의 골을 깊게 만드는 악재가 터지면 은행 대출로 집을 샀거나, 급전이 필요해 집을 팔려는 유주택자들의 저항이 거세진다.

집값이 정치공학과 접목되면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진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의 48석 중 40석을 싹쓸이할 수 있었던 배경은 뉴타운 개발에 따른 집값 상승 기대감이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많은 한나라당 후보들로부터 “왜 내 지역구를 방문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받을 정도로 뉴타운 개발은 최고의 ‘인기 정치상품’이었다. 지난 4월 경기도 분당을(乙) 재ㆍ보궐 선거도 마찬가지다. 넥타이 부대들이 퇴근 후 투표장을 대거 찾았고, 그 결과 기존 통념과 달리 잘사는 아파트촌에서 여당 후보가 낙선했다. 분당 집값 하락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 심리가 깔려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

‘박순호(號)’ 출범 이후 서울 재건축 단지 아파트는 급락세다. 공공성 강화 정책으로 재건축 단지에 공원 도로 등을 많이 넣으면 사업성이 악화돼 투자 메리트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촉발시킨 현상이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 조사결과 박 시장 당선 이후 4주 사이 강남 재건축 아파트 시가총액은 7450억원어치 줄었다.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강남 재건축 시장이 위축되자 재개발구역 지분은 물론 강북 수도권의 일반아파트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집값의 정치공학적 의미를 감안하면 국토부와 서울시의 재건축 공방이 시사하는 바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공공성 강화로 주택공급 총량이 떨어지면 구매력이 약한 시민들은 서울 밖으로 쫓겨날 것”(국토부)이라거나 “인위적인 속도조절이 아니다. 염치가 있어야 한다”(서울시)는 반박은 결국 집값 하락에 대한 ‘네탓 공방’으로 비쳐진다는 점이다. 국토부와 서울시의 공방은 재건축 단지 주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이자 인구 1000만여명이 거주하는 최대 도시다. 주거는 물론 교통 환경 등 다양한 도시 문제들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다. 그런 만큼 중앙 정부인 국토부와 서울시가 접점을 최대화해야 새로운 문제들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

우리는 1~2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와 베이비 부머 은퇴 본격화 등 사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인구구조학적 변화를 맞고 있다.당연히 주택 정책에서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빠른 변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관건이다.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국토부와 서울시가 ‘네탓 공방’에만 매달린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뒤늦은 상황 대처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감은 물론이다.

박기호 건설부동산부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