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분통 터뜨린 MS 주주들
"눈보라를 뚫고 두 시간을 달려왔습니다. 들은 것이라고는 태블릿PC와 윈도폰 등 신제품 얘기뿐인데 애플은 이미 몇년 전부터 팔던 제품들 아닙니까?" "뭐가 그리 급한지 정확히 14분32초 질의응답 후에 도망치듯 나갔어요. "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벨뷰 메이덴바우어센터에서 열린 마이크로소프트(MS) 주주총회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회사 측에서 주주들의 질의시간을 엄격히 제한한 게 발단이었다.

1년에 단 한번 빌 게이츠 회장과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450여명의 주주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궁금한 게 많은 MS의 주주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왜 주가는 10년 가까이 20~30달러 사이에 갇혀 있는지,구글 애플 등 강력한 경쟁자들에게 밀려나면서 '한 물 간 제왕'이라는 굴욕적인 수식어가 붙어다니도록 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물을 건 많은데 속시원한 답을 들을 시간은 없었다.

주주들이 "질문을 더 받아달라"며 항의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주총에 참석한 한 펀드 매니저는 "알 만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주주들에게 뻣뻣하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MS의 이런 태도는 MS와 똑같은 장소인 메이덴바우어센터에서 주총을 여는 유통업체 코스트코와 뚜렷하게 엇갈린다. 코스트코의 제임스 시네갈 CEO는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주총장을 떠나지 않고 세세히 답변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그의 단짝 찰스 멍거 부회장은 주총에서 거의 하루종일 주주들을 상대한다. 이 회사의 주총은 '자본주의의 우드스톡 축제(1960년대 반전운동으로 시작된 록음악 축제)'로도 불린다. MS 주총장에서 한 주주는 "버핏과 멍거는 8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6시간 이상 쉬지 않고 답변한다"며 MS 임원들의 무성의를 꼬집었다.

주주의 의견조차 귀담아 듣지 않는 MS가 소비자는 어떻게 대할까. "왜 우리를 주인으로 대접하지 않는가?"라는 주주들의 항의에 빌 게이츠 회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표정에서 구글 애플 등에 제왕의 자리를 내주고 추락 중인 MS의 모습이 보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전설리 국제부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