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덜 팔았더니 '100년 1등' 코카콜라 꺾어…건강이 최고 '엄마 경영' 통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신흥시장은 중국이나 인도가 아닙니다. 여성입니다.”

지난 3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광고대회에 참석한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56)가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세계 여성 인구는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합친 것의 두 배”라며 여성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이 회장은 “일본은 주부들이 가계 수입의 63%를 소비하는 데 비해 중국은 이 비율이 50%, 인도는 44%에 불과하다”며 이들 지역 여성을 공략하는 게 펩시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인도는 여성들의 지출이 그만큼 증가할 여지가 많다는 판단에서다.

여성과 인도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2006년부터 펩시를 이끌고 있는 누이 회장의 핵심 경영철학은 ‘건강’이다. 아시아광고대회 연설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도 주부들이 제품을 고를 때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이 회장은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건강을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그의 경영철학은 100년 이상 코카콜라에 뒤졌던 펩시를 업계 1위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됐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생각한 것이 성공 비결

누이 회장이 펩시에 입사한 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콜라 회사였던 펩시에서 청량음료 색채를 벗겨내는 것이었다. 그가 펩시에 합류한 것은 1994년이었다. 펩시는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모토로라 등에서 전략 수립 등을 담당한 그를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펩시의 콜라 시장 점유율은 코카콜라에 10%포인트 이상 뒤졌다. 코카콜라의 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는 “더 이상 펩시에 대해 신경써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굴욕적인 말까지 했다. 펩시는 콜라 시장의 강자였지만, 항상 2등이었다. 1898년 설립 이후 12년 먼저 시장에 뛰어든 코카콜라에 100년 넘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누이 회장은 콜라만으로는 코카콜라를 꺾을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게 ‘사업 다각화’ 카드였다. 콜라 시장에서는 패해도 다른 분야에서 매출을 늘리면 회사 전체로는 코카콜라에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당시 펩시는 KFC 피자헛 타코벨 등 유명 패스트푸드점을 계열사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누이 회장은 펩시는 계열사 간 공통 분모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먹을거리를 파는 회사라는 것 외에는 비슷한 점이 없었다.

그는 계열사를 하나로 묶을 화두(話頭)는 ‘건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부였던 누이 회장은 당시 불기 시작한 웰빙 열풍에 주목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웰빙 바람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등으로 번지면 파급 효과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청량음료 업체였던 펩시의 변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이 회장은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한 1998년 주스회사인 트로피카나를 인수했다. 사업 다각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의 승부수는 2년 뒤 나왔다. 스포츠 이온음료 ‘게토레이’를 만들던 퀘이커오츠를 인수·합병(M&A)한 것이다. 당시 게토레이의 스포츠 음료 시장 점유율은 84%에 달했다. 퀘이커오츠 인수에는 코카콜라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코카콜라 이사회는 너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퀘이커오츠를 사들이는 것은 사업 방향과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누이 회장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134억달러에 퀘이커오츠를 인수했다. 퀘이커오츠는 게토레이 외에도 퀘이커오츠 오트밀 등 시리얼 제품도 생산하고 있었다. 퀘이커오츠 인수는 펩시가 여러 제품군을 갖추는 데 밑거름이 됐다. 로저 엔리코 전 펩시 CEO는 “퀘이커오츠 인수는 펩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결정이었다”며 누이 회장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누이 회장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탄산음료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췄다. 현재 펩시의 매출 중 탄산음료 비중은 20%까지 내려왔다. 건강과 거리가 먼 피자헛 KFC 등 외식사업 부문은 분사를 결정했다.

누이 회장의 전략은 보기좋게 맞아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 건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자 콜라 등 탄산음료 판매는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대신 과일주스 이온음료 시리얼 등 건강 음료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체질을 개선한 펩시는 2004년 292억6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마침내 코카콜라(219억6200만달러)를 앞질렀다. 2005년부터는 시가총액과 순이익도 코카콜라를 넘어섰다.

◆신흥국 건강식품 시장 공략 박차

누이 회장이 주도한 M&A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사내 입지도 넓어졌다. 그는 2001년 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승진했고, 2006년 CEO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스티브 레인먼드로부터 회장 자리까지 물려받았다.

누이 회장은 요즘 신흥국 건강식품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말 러시아 최대 낙농식품회사인 윔빌단(WBD)을 54억달러에 인수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펩시는 2018년 러시아가 최대 해외 시장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윔빌단 인수를 발판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시장까지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펩시는 중국에 2008년 10억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향후 3년간 25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펩시는 중국에 27개 공장을 세웠고 직원은 2만명이나 된다. 요구르트 부문 사업 강화를 위해 독일의 대표적 유제품 업체인 뮐러와도 손을 잡았다. 뮐러와 합작법인을 세워 요구르트 시장을 공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누이 회장은 지난달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과일주스, 견과류가 들어간 시리얼, 스포츠 음료 등 건강에 좋은 식품 매출을 올해 150억달러에서 2020년 300억달러로 두 배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