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내에게 줄 꽃 한 송이
"사랑해." "축하해." "고마워."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졸업이나 승진을 축하할 때,혹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할 때 가장 어울리는 선물은 단연 '꽃'이다. 꽃말도 다양하다. 장미는 사랑,에델바이스는 소중한 추억,난초는 절조,아카시아는 비밀스러운 사랑 등.이렇듯 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꽃을 바라보는 시각도 연령대마다 제각각인 듯하다. 예닐곱 살 꼬마들의 투명한 눈망울에 비쳐지는 꽃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젊은이들에게 꽃은 오늘 잃어버린 또 하나의 사랑일 수도,혹은 오늘 나를 살게 하는 행복한 꿈일 수도 있다. 나이든 이들에게 꽃은 서글픔이랄까. 아름다움을 내뿜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날이 유한(有限)하다는 게 한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그리움의 무게로 기억과 추억을 구별지을 수 있는 나이인지라 조야한 청승에 기대지 않는다.

국화꽃 짙은 향내가 코끝을 가득 메우는 이 계절,우리 화훼농민들의 시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귓전에 들린다. 내수시장 침체와 주요 수출국이던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화훼시장에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쳤다고 한다.

사실 우리 국민에게 '꽃은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꽃 소비액을 보더라도 연간 1만7000여원 수준으로 네덜란드 등 농업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특히 주소비층이 돼야 할 젊은이들이 꽃을 구매하는 데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며 프러포즈하는 광경을 본 지도 꽤 오래됐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정부가 침체된 화훼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는 거다. 일상생활 속에서 '꽃 소비'를 활성화하고 '꽃 가꾸기 운동'을 통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매년 200억원 넘게 우리 장미와 선인장을 수입하고 있는 이웃 일본도 우리 사정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10여년 전 6000억엔 규모이던 화훼 연매출이 요즘 들어 4000억엔대로 뚝 떨어졌고,장례식장과 결혼식장에서도 꽃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란다. 더 큰 문제는 관상용 꽃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들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더 이상 회사 내에 화분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도 유치원에 무료로 꽃을 보내 인성 형성 시기부터 꽃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화육(花育) 프로그램'과 화훼 매출의 0.1%를 모금해 조성한 '꽃을 들고 걷자'는 캠페인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요즘 들어 수출입은행 본점 사무실엔 생기가 돈다. 직원들 책상 파티션마다 수경화분을 올려놓았더니 종전 사무실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저녁 퇴근길에 동네 꽃집이나 한번 들러야겠다. 오랜만에 아내에게 사다줄 꽃다발을 고르기 위해 말이다.

김용환 < 한국수출입은행장 yong1148@koreaexim.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