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금 당장 책 한 권!
유독 비가 많이 왔던 여름이 결국 지나갔다. 성큼 다가온 가을에 어느새 지난 여름의 궂은 기억은 다 없어져가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잊기 힘든 일도 많았다. 강남 한복판에 물난리가 나고 산사태로 인명피해도 있었다. 서울시 주민투표와 시장 사퇴는 장안을 넘어 전국의 화제가 되었다. 거기에 안철수 교수가 일으킨 정치권의 새바람 등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데 지난 여름 있었던 많은 일들 중에 유독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안 교수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보통의 아버지들이라면 아들의 성공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다. 시장은 물론 대통령감으로도 거론되는 마당이니 필부의 마음가짐으로는 자식의 성공에 함께 설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안 교수의 아버지는 '책 읽기 좋아하는 아들이 맘편히 책을 볼 시간이 없어질 것 같아서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고 일생에 한 번 오기도 힘든 서울시장직 기회를,그것도 지지율이 압도적인데 '책을 못 읽을까봐' 반대한다니 정말 놀라웠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였다. 왜냐하면 안 교수가 이런 지지를 받는 사람이 된 것도,아버지가 안 교수를 그런 사람으로 키운 것도 결국 '독서' 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강화도에 침입해 민가를 둘러보고는 무척 놀라고 자존심 상해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라도 조그만 황토방 안에 책이 한두 권 이상 꼭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가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는 정말 생소한 한편 자신들의 나라와 비교되는 일이었다. 이처럼 책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기에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장이나 대통령 자리보다 책 읽기를 강조하는 안 교수 아버지의 모습에서 새삼 독서의 소중함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나 자신도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독서를 잘 할 수 있을까? 읽기도 전에 이런저런 고민이 생겨난다. 이른바 '추천도서 100선','꼭 읽어야 할 책'을 봐야 할까. 언제 책을 보는 것이 좋을까. 게다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며 책을 권한다.

하지만 사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은 따로 없다. 독서하기 좋은 장소나 시간도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독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일단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그냥 읽자.그리고 무한히 넓은 책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필자처럼 기업 경영을 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위한 돌파구가 보일 수 있고,공부하는 학생에게는 그들이 기다리는 미래를 위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감동이,이별한 사람에겐 따뜻한 위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머뭇거리지 말자! 지금 당장 책을 펴 보자!

노학영 < 코스닥협회장·리노스 대표이사 > hyroh@kosdaqc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