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추가적인 비상계획 수립을 지시한 것은 미국 경제가 현재 상태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가정에 따라 이뤄진 조치로 분석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둔화가 또다시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포석이 깔려 있다.

BoA는 대규모 모기지 관련 소송으로 120억달러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손실이 커지면서 지난 2분기 88억300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주가도 올 들어서만 60% 넘게 하락했다. Fed가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BoA에 2중,3중 차단막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이유다.

◆계속되는 규제당국의 압박

긴박한 Fed "제2 리먼 막자"…2중 3중 보호막
규제당국이 BoA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압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5월 규제당국은 지배구조와 리스크 관리 및 유동성 관리 대책을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맺도록 해 경영진을 놀라게 했다. Fed는 앞서 메릴린치를 인수한 BoA의 자금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에 의심을 품고 이 은행의 등급을 강등했다. 올해 초에도 규제당국은 배당금을 올릴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BoA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또 한번 경영진을 당혹스럽게 했다. 당시 다른 은행들은 대부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배당금을 올렸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BoA 최고경영자(CEO)는 공개적으로 배당금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가 규제당국의 반대로 입장을 번복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규제당국은 또 모이니한 CEO에게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최고경영진 교체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모이니한 CEO는 모건스탠리의 최고법률 책임자였던 개리 린치를 BoA의 새 최고법률책임자로 임명해야 했다.

◆사그러들지 않는 시장의 우려

자본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서 커지면서 BoA의 주가는 올해 들어 60% 넘게 하락했다. 8월 초에는 하루에 16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날아가기도 했다. BoA 경영진은 이 같은 시장과 규제당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모기지 중개 사업부문을 매각하기로 하고 중국건설은행(CCB) 지분을 매각해 33억달러를 확보하는 등 유동성 확충에 주력해왔다.

특히 지난 8월25일에는 워런 버핏이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발표하면서 BoA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다. 주가도 크게 반등했다. 하지만 지난 1일 종가 기준으로 BoA 주가는 여전히 41% 떨어진 상태다. 일련의 조치들이 BoA가 제2의 리먼이 될 수도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2중,3중의 보호막 마련

Fed가 BoA에 추가적인 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하자 BoA는 자회사 메릴린치 실적에 연계한 별도의 주식을 발행하는 방안을 비상계획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이니한 CEO가 이 방안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메릴린치 인수 후 추진해온 통합 전략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WSJ는 모이니한 CEO가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방안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