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금이 일본 기업 사냥에 나선 것은 일본 내 중소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

KOTRA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81만개 중 12만개가 폐업이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주로 자본금 5000만엔 이하 소기업들이다. 오너 창업자의 고령화와 가업승계 실패가 발목을 잡았다. 이 때문에 일본 경제의 근간이 돼온 '모노즈쿠리(장인정신)' 간판 기업들이 인수 · 합병(M&A) 시장에 쏟아지는 양상이다.

일본에서 자본금 5000만엔 이하 소기업 경영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55세 안팎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져 지금은 60대를 바라보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된 단카이세대(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 이후 가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도쿄상공리서치가 2007년 폐업을 검토하고 있는 자본금 5000만엔 이하 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표자가 고령화됐다'는 응답이 11.2%,'후계자가 없다'는 답은 20.1%로 나타났다. 둘을 합하면 31.3%로 폐업 검토 이유 중 가장 높다. 젊은층들이 외면하는 금형,도금,주물 등 뿌리 산업 등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얼마 전 일본 도금조합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는데 도금 폐업률이 10년 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고,그 이유의 90% 이상이 가업을 이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며 "40~50년을 이어온 일본의 기초기술이 그대로 사장될 처지에 놓였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이러한 일본의 분위기를 감지해 중소기업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중국은 2001년 일본기업 M&A에 뛰어든 이후 매년 4~9건 안팎을 보이다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는 37건으로 한국 기업의 일본 기업 M&A 건수(11건)보다 세 배 이상 많다.

홍석균 KOTRA 일본 사업단 과장은 "중국 기업이 인수한 일본 기업의 약 57%는 제조업"이라며 "M&A의 주요 목적이 일본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최근 정책자금을 통해 일본 기업 M&A펀드를 조성하는 등 분위기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출발은 험난하다. 이승원 나우IB캐피탈 대표는 "중국 시장이 크다 보니 일본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나 M&A에 비교적 호의적"이라며 "기술적 라이벌이라는 시각 때문에 한국기업에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원천기술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M&A 외에 일본 중소기업 전용공단 조성과 기술자 영입 등의 방안도 다각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김세종 연구위원은 "특히 미분양이 심한 지방공단이나 개성공단 등에 일본 기업 전용부지를 제공하고 폐업 위기에 놓인 일본 기술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품 · 소재와 열처리 등 한국과의 시너지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