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1997년부터 다세대주택(임대용 집합주택)에도 디자인 바람이 불었다. 잡지 TV 등에 건축가가 디자인한 독특한 외관의 주택들이 소개되면서 유행을 탔다. '디자이너즈 맨션'으로 불린 이 주택들은 건축비는 비싸지만 희소성이 있어 임대료를 높게 받을 수 있고,공실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디자이너즈 맨션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실용적이지 않은데다 큰 창,나선형 계단,내벽 콘크리트 노출 등 비슷한 주택들이 너무 많이 공급된 결과다.

국내에서도 고급 빌라 · 주상복합에서 시작된 디자인 열풍이 아파트를 거쳐 다세대 주택,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2000년대 들어 세계적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고급주택을 앞다퉈 선보였다. 뚝섬 한화 갤러리아포레(건축가 장 누벨),평창동 오보에힐스(이타미 준),해운대 아이파크(다니엘 리베스킨트)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해외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일반 아파트도 등장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수원에서 공급 중인 6500가구 규모 '수원 아이파크 시티'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건축가 벤 판 베르켈이 건축 디자인을 맡았다.

최근엔 도시형 생활주택,다세대 주택 등에도 디자인이 도입되고 있다. 수목건축은 디자인을 차별화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서용식 대표는 "수익형 부동산의 최대 적은 공실"이라며 "임차인들은 보기좋은 주택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세대 주택은 구청 주변 허가방(인 · 허가 대행업체)의 흔한 도면에 따라 붉은 벽돌로 짓는다'는 고정관념도 무너지고 있다. 서울 금호동2가에 디자인을 접목한 다세대 주택 'Y하우스'를 지은 건축가 전숙희 씨는 "획일적이고 너무 비싸진 아파트에 회의를 느낀 젊은 세대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차별화된 집을 지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디자인을 차별화한 주택은 다양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김종찬 기안건축 소장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과잉 디자인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급주택 전문 분양대행업체인 미드미디앤씨의 이월무 사장은 "해외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고급주택을 공급한 시행사가 돈을 번 경우는 드물다"며 "겉모습이 좋아도 실용적이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작년 5월 판교신도시에서 공급한 고급빌라 중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주택(100가구)은 원가 이하에 내놨음에도 1차 분양에서 6가구만 팔렸다. 유리로 돼 있어 앞뒷집 내부가 훤히 보여서다.

피데스개발 R&D센터의 김희정 소장은 "주택은 기후 생활습관 등을 반영해 지어야 하는데,잘 모르는 외국 디자이너가 '작품 개념'으로 설계한 집이나 외관만을 강조한 집이 실용적일 수는 없다"며 "기능과 성능을 살리면서 디자인한 집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근 건설부동산부 차장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