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논란이 됐던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골자는 한은 설립 목적에 '금융 안정'이 추가된 것이다.

한은은 이에 따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은행 검사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최근에 문제가 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대한 자료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은행채에 지급준비금을 부과해 대출 총량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한은은 '축제' 분위기다. 보도자료를 통해 "한은법 개정이 국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대외 신인도,한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들 사이에선 "맥주 파티라도 해야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국회가 금융위원회 등 다른 정부 부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은행과 기업의 돈줄이 막혔지만 한은은 '물가만 신경쓰느라 금융위기 대처에서 뒷북만 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계부채 책임에서도 한은은 자유롭지 않다. 금융위기 후 국내 경기가 'V자'로 회복할 때 금리 정상화를 서두르지 못한 것이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요인 중 하나다.

한은은 최대 목표인 '물가 안정'조차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한은이 정한 물가억제 상한선 4%는 올해 단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1~7월에 매달 4%를 넘었고 8월 5.3%로 뛰었다. 국제 원자재 값만 탓할 수도 없다. 원자재 시세에 민감한 농산물과 석유류를 뺀 근원물가도 10개월째 상승해 8월에 4%에 도달했다. 한은으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은법 개정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짐이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란 두마리 토끼를 쫓아야 한다는 점에서 한은의 정책 역량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한은에 힘을 실어줬는데도 제 역할을 못하면 더 큰 비판이 뒤따를 게 뻔하다.

한은 밖에선 '물가 하나 제대로 못 잡는 한은이 금융 안정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 않다. 한은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는 1년5개월째 정원을 채우지 못해 파행 운영되고 있다. 한가롭게 파티나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