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에 본사를 둔 현대오일뱅크는 올 하반기 경기 판교에 새 연구소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대전과 경남 거제에 흩어져 있는 R&D(연구개발)조직도 판교로 통합하기로 했다. 한화그룹도 태양광 등 신성장동력 연구거점을 판교에 마련할 예정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비닐하우스가 드문드문 있는 도시 근교에 불과했던 판교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입지,IT(정보기술) BT(바이오기술) CT(통신기술) NT(나노기술)가 융합된 계획단지라는 이점,경기도와 성남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뒷받침이 기업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년 사이 80여개 기업 입주

25일 판교테크노밸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왕판교IC를 막 벗어나자 군데군데 자리 잡은 현대식 빌딩들 사이로 크레인이 곳곳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2009년 단지 입구에 파스퇴르연구소가 들어선 뒤 한동안 잠잠했던 단지는 지난해 5월 삼성테크윈이 사옥을 지으며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됐다. SK케미칼 SK텔레시스 등 대기업이 속속 모여들었고,올 들어 이노밸리,한화컨소시엄,한국바이오벤처협회 등의 건물이 완공되면서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은 모두 87개에 이른다.

전체 36개 컨소시엄 가운데 10개가 마무리됐다. 다음달 준공식을 가질 안철수연구소를 비롯해 넥슨 엠텍비전 등 5곳이 올해 안에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NHN과 네오위즈가 들어오는 2013년까지 추가로 14개 컨소시엄이 입주를 마무리하며,나머지 7곳은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완료할 계획이다.

공사가 모두 끝나면 판교테크노밸리는 259개 기업에 종업원 수만 8만~10만명에 이르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태어나게 된다. 주변 상가까지 더하면 13만~16만명에 이르는 인원이 66만2000㎡의 부지에 북적거리게 된다.

◆지방 업체엔 R&D 메카

현대오일뱅크와 같이 지방에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에 판교는 만성적인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해주는 돌파구다. 서산 등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윤활유 부문 진출 등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연구 조직을 키울 필요성이 커지자 판교를 새 연구소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고 있다.

창원에 본사가 있는 삼성테크윈은 연구소를 판교로 옮긴 뒤 효과를 보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업부별로 창원 본사와 용인 기흥,성남으로 흩어져 있던 연구 조직을 모은 뒤 당장 올해 공채부터 이공계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대전 등에 연구 조직이 흩어져 있는 삼양사도 의약 등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곳에 부지를 확보하고 설계를 진행 중이다

대기업 연구소와 벤처뿐 아니라 바이오 업종에서도 크리스탈지노믹스,휴온스 등이 입주한 데 이어 차바이오텍과 차바이오메드 등으로 구성된 차그룹컨소시엄이 공사를 시작했다.

업종간 융합이 이뤄지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다. 남동경 경기도 과학기술과 사무관은 "실리콘밸리는 자연발생적인 데 반해 판교테크노밸리는 도시계획 아래 조성돼 체계가 잘 잡혀 있다"며 "대학이 들어오지 못하는 한계는 산학연 R&D센터를 유치해 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직원은 "부족하던 식당과 은행,병원 등 편의시설도 속속 들어오는 등 하루하루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다음달 신분당선이 개통되고 입주 업체 수가 늘어나면 지금과는 또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재희/김동욱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