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글로벌 재정위기 대비하라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전격적으로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시켰다. 비록 부채상한 증액에는 합의했지만 국가채무 상환능력의 개선을 위한 재정적자 감축계획이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S&P는 이번 합의 과정에서 드러난 정책결정 체계의 비효율성과 예측 불확실성,그리고 정치권의 의지 결여도 등급 하락의 요인이 됐음을 강조했다.

무디스,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은 아직 S&P의 조치에 동조하지 않고 있어 직접적인 여파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채 신용등급 하락은 각국 중앙은행,펀드,연기금 등 투자기관의 보유물량 축소 등으로 국채금리를 상승시키며,정부의 자금조달 비용과 이자상환 부담을 높여 추가적인 재정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모기지,상업대출 등 전반적인 시장금리 상승을 야기해 민간소비와 투자수요를 둔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AAA와 AA+는 같은 우량등급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채권평가,담보가치 산정 등에서 둘 이상의 신용평가회사가 등급을 낮춰야 실질적인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 조치의 파급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자기자본비율 산정시 국채,정부보증채,준정부기관 채권 등에 대한 위험가중치 변화는 없을 것임을 강조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서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경제운용 능력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는 1945년 이후 국제경제 질서의 골간이 돼온 달러중심 국제통화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이다. 소위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듯,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정적자 문제도 기축통화국으로서의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와 같은 뿌리에서 연유한다.

더욱이 세계경제의 재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미국이 더이상 재정을 재량적 경기조절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 국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글로벌 위기 이후 대규모 부양책이 아직 견실한 실물경제 회복으로 연계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국의 거시정책 여력이 소진되고 있다는 우려가 이번 글로벌 금융 불안 확산의 배경인 것이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점차 글로벌 재정위기로 변모하고 있다. 금융 불안과 경기 재침체 우려로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의 유지가 불가피한 가운데 국제자본 흐름의 변동성은 더 높아져 앞으로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국가에 위기발생 위험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이에 대응해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 신흥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많지 않다.

첫째 무엇보다도 재정 건전성을 공고히 유지해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높이고,유사시 정책수단으로서 재정의 운용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아직 양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공기업 부채,고령화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 등이 향후 국가채무 확대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재정의 효율화와 더불어 국가채무 관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둘째 달러의 위상 약화와 더불어 국제통화가 다극화되고 글로벌 자산재편이 시도되는 과정에서 환율과 자본흐름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환율의 조정기능을 높여 대외수지의 불균형을 방지하고,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거시건전성 규제감독 장치의 보강을 통해 외채 및 자본유출입 구조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S&P가 미 정부와 의회의 위기대응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도 유의한 시사점을 준다. 단편적 시각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건전성과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엔 지금 우리경제를 둘러싼 대외여건이 너무 불안하다.

함준호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