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극한대립으로 파업 장기화

한달째를 맞는 SC제일은행의 파업이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측은 "한국적 노사 문화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체계 개편 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노조도 좀처럼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해외 원정투쟁까지 감행하고 있다.

이래저래 파업이 장기화되는 양상이다.

치킨 게임은 두 명이 각각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 충돌 직전 운전대를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을 맞는다.

◇ 노사 양측 "우리 사전에 양보란 없다"
지난달 27일 사측의 개별 성과급제 도입에 반대해 시작된 SC제일은행 파업이 26일 한달째로 접어들었다.

3천명에 가까운 노조원들은 여전히 속초의 유스호스텔에 모여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은행 394개 지점 중 42개 지점이 문을 닫았으며 나머지 지점도 정상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노사 양측은 전반적인 임금체계의 개편을 놓고 심각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쟁점이 됐던 개별 성과급제는 추후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논의키로 의견을 모으면서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후선발령제도'와 `상설 명예퇴직제'가 다시 쟁점이 됐다.

업무 성과가 부진한 간부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후선발령제도는 시중은행이 대부분 차장급 이상에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이 제도를 전 사원 대상으로 시행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매년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상설 명예퇴직제는 시중은행 대부분이 철폐했지만 노조는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제도는 법정퇴직금 외에 별도의 명예퇴직금을 챙길 수 있어 퇴직자에게 유리하다.

결국 노사 양측 모두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셈이다.

◇ 파업 장기화, 노사 `믿는 구석' 탓
2004년 한미은행 파업기록(18일)을 깨고 은행권 최장기 파업을 이어가는 배경에 대해 금융권은 노사 모두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사측은 우선 파업 피해가 예상 외로 적은 데 안도하고 있다.

2004년 한미은행 파업 때는 18일 동안 2조6천억원이 넘는 예금이 빠져나갔다.

그런데 한달 동안 계속된 이번 파업 때 빠져나간 예금은 고작 6천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답은 사이버 거래의 발달에 있다.

인터넷, 자동입출금기(ATM), 스마트폰 뱅킹 등 일선지점을 거치지 않는 거래가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일선지점의 파업 영향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영국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 또한 사측의 믿는 구석이다.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그룹 회장은 최근 한국 경영진을 지지한다는 이메일까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가 기댈 곳은 노조원들이다.

그런데 그 노조원들이 노조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파업이 한달째 접어들었지만 이탈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사측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노조가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배경이다.

더구나 파업기금 및 상급노조 지원금 등이 수십억원에 달해 `무노동 무임금'의 열악한 파업 조건을 상쇄시키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치킨 게임'을 끝내지 않는 한 언젠가 공멸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계 보험사 중 선두권을 유지하다 2008년 234일 간의 장기 파업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그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알리안츠생명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사가 대립을 계속하다 은행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노사 양측 모두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다른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