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갈등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둘러싼 날선 공방이 사퇴와 비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정부와 기업 간의 갈등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기름값 강제 인하에서부터 기업 이익의 강제 분할 요구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정부의 직접 개입과 이에 반발하는 재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또한 모든 대학생의 조건 없는 '등록금 반값'이라는 황당한 주제를 놓고 이를 주장하는 학생들 및 정치권과도 대립 중에 있다.

다양한 갈등을 해소해야 할 여의도 정치권은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무조건 반값 등록금과 같이 갈등을 스스로 조장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스스로의 내부 갈등 확대재생산에 여념이 없다. 집권 여당에서는 각종 복지 관련 정책이 좌클릭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부터,좌클릭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당위성 논쟁까지 여러가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야당에서는 햇볕정책과 관련해 종북(從北) 진보냐 아니냐를 놓고 언쟁을 높이고 있다.

사실 역사적 사례들을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사회적 발전이나 변화는 갈등과 대립,그리고 해소라는 과정을 통해 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의 사회나 경제 구조 중에서 불합리하거나 불공정 또는 부도덕한 부분에 대해 도전이 일어나면,기존 구조의 옹호 계층과 도전 계층 사이에 갈등 관계가 형성되고 최종적으로는 기존의 문제점이 완화되면서 사회가 발전했다. 모든 갈등과 대립 자체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갈등은 궁극적으로 사회 발전을 가져오는 과정의 일부라고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최근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갈등의 해결자가 돼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많은 갈등 무대의 주연들이라는 점이다. 검 · 경(檢 · 警) 수사권과 관련된 갈등 장면은 정부 내부의 문제조차 정부 스스로 조정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국민에게 낱낱이 보이는 것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정부와 대기업 간 갈등은 사회 발전 측면에서 보면 참으로 황당한 갈등이다. 정도(程度)를 넘어선 정부의 강제적인 시장 개입은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지 못할 것이고,궁극적으로 서민과 영세 중소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정부가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요,알면서도 이런다면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다. 조건 없는 복지의 대폭 확충을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지만,복지 확대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현재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는 없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최근에 나타나는 다양한 갈등의 기저(基底)에는 갈등을 유발하는 실상에 대한 정확한 사실 공개가 안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검 · 경 수사권 갈등의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찰이나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대우받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기업 문제의 경우 대기업 담합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와 불법 하도급 행위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학 등록금의 경우 대학이 어떻게 등록금을 사용하는지,재단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복지 확대가 가져올 재정 부담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역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덥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구체적인 갈등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 이전에 모든 관련 사항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부분의 갈등 문제에서 구체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면 이미 갈등은 절반 이상 해결된 것과 다름이 없어질 것이다.

강석훈 < 성신여대 경제학 교수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