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족 위험해지고 브로커 배만 불려줄 것"

"대북송금을 정부 승인받고 하라는 건 내 가족 죽이라는 말 밖에 더 됩니까"

국내 거주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할 때 통일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에 탈북자들이 거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4일 이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는 상거래에 수반되는 대금결제만 승인 대상으로 하지만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지난해 탈북자 3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9.5%가 대북송금 경험이 있다고 답하는 등 대북송금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가 남북간 금전이동의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이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정부가 대북송금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승인권 행사로 탈북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하고 북쪽 가족의 신원 발각 위험만 높인다는 점을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브로커를 통해 암암리에 이뤄지던 대북송금 문제를 정부가 수면 위로 끌어올릴 경우 북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어렵게나마 돈이 전달되던 상황이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들 사이에 가장 많이 제기된다.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내려고 신고를 하면 어느 지역의 누구에게 얼마를 보내는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러한 정보가 유출되면 북쪽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개연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남북관계 속에서 정부가 송금정보를 완벽하게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한 탈북자는 26일 "북쪽 친척들이 내가 보낸 돈으로 국경까지 와있고 이제 중국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며 "정부에 정보 알려줬다가 괜히 꼬리 잡혀서 발각되면 어떻게 책임질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북송금이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인이나 조선족 등을 통해 비밀리에 이뤄져온 일이어서 누군가 악의적으로 신고하지 않는 한 정부 승인없이 송금한다고 해도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상당수 탈북자가 중국 국적의 친인척이나 지인이 있어 법망을 피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돈을 전달할 때는 중국이 아닌 국내은행 계좌를 이용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쉽게 단속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대북송금 승인제'로 인해 송금 과정이 복잡해지면 정부의 감시를 피하고자 여러 사람을 거치게 돼 송금비용이 늘어나고, 현재 송금액의 30% 수준인 브로커 비용도 위험수당이 포함돼 더 뛸 것이란 게 이들 탈북자의 하소연이다.

탈북자들이 느끼는 불쾌감, 무력감도 상당하다.

한 탈북자는 "이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면 이런 법안을 낼 수 없을 것"이라며 "가족들이 내가 보낸 돈으로 먹고사는 것을 뻔히 아는데 돈을 안 보낼 수도 없고 정부에 정보를 줄 수도 없으니 불법행위자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정부가 대북송금에 관여하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큰 틀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통일부가 예외로 인정하겠다는 `일정금액'을 현재 평균적인 송금액수보다 올려 설정해 일반 탈북자들의 송금은 승인절차 없이 보내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대북송금에 관한 절차가 전혀 없어서 그동안 위법성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절차를 만들어 제도화·양성화 하겠다는 취지"라며 "금액 기준 마련뿐만 아니라 일정 금액 이상 송금시 탈북자 및 북측 가족의 신원을 보호하는 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의견을 수렴해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장철운 기자 chomj@yna.co.kr jc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