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당선자는 지난해 8월 총리 후보 낙마라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노풍'의 진원지인 김해에서 야권단일 후보에 맞서 중앙당의 지원도 마다한 채 홀로 유권자들을 접촉하는 '나홀로 유세'를 통해 초반 열세를 뒤집고 당선됨으로써 '지방 정치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던지고 '중앙 정치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8년 경남도의원을 시작으로 거창군수와 경남도지사를 거쳐 국무총리 후보에까지 올랐던 이력을 지닌 그는 그동안 선거에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어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5번째로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도 '불패 행진'을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자신보다 나이많은 사람들에게는 초면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형님' 또는 '누님'이라 곧잘 부르는 특유의 친화력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 같은 친화력과 국무총리 낙마에 대한 반성을 앞세운 '자세 낮추기'로 한나라당 아성인 경남 속의 야도(野都)라는 불리함을 정면 돌파해 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해는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경남에서 유일한 민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되고 도의원과 시의원도 야권이 한나라당보다 훨씬 많이 당선돼 '경남의 야도'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 부친과 절친한 사이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왼팔이었던 고 김동영 전 장관(1991년 작고) 집에 하숙하면서 민주산악회 본거지였던 김 전 장관 집을 드나들던 정치 거물들을 만나고, 가끔 김 전 대통령 집에 드나들며 정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의 각별한 애정을 받으며 의리와 신의, 뚝심을 배웠다고 평소 밝혔다.

대학 졸업 후 이강두 전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했던 그는 고향에서 도의원을 지낸데 이어 2002년 지방선거에서 40세의 젊은 나이에 거창군수에 당선됐다.

2년 후 당시 김혁규 경남도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지사직을 사퇴하자 도지사 보궐선거에 도전, 42세에 최연소 광역단체장이 됐다.

2004년 6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두차례 도지사직을 수행하며 '남해안 시대'를 주창, '동ㆍ서ㆍ남해안 발전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내 지자체가 상향식으로 입법을 주도한 최초 사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월 돌연 6ㆍ2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그해 8월 총리 후보자에 내정됐으나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과의 관계를 둘러싼 거짓해명 등에 발목을 잡혀 임명 동의안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후보직을 자진사퇴한 뒤 중국 유학길에 올라 베이징에 머물다 김해을 보궐선거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뛰어들어 재기에 성공했다.

재기에 성공한 김 당선자는 이제 명실상부한 차세대 리더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김 당선자는 특히 당 안팎의 세대교체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영남이라는 견고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잠룡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의원 출신으로 지방행정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김 당선자가 중앙 정치무대에서 어떠한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서울.창원연합뉴스) 김영만 이한승 기자 ymkim@yna.co.kr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