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화당과 오바마 정부가 예산안 협상 시한 1시간여를 앞두고 극적 타결함으로써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사태를 모면했다. 하지만 예산안 대치 국면은 하원을 공화당에 내준 오바마 정부가 부채 한도 증액과 2012년 예산안을 두고 또다시 극한 갈등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국정 충돌의 서곡에 불과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9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어젯밤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가 정부 폐쇄 사태를 막는 동시에 지출을 삭감하고 미래에 투자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하면서도 "중요한 사안에 대한 양보가 필요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정치 상황을 반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막판 예산안 협상에서 공화당은 385억달러의 예산 삭감을 이끌어냈고,민주당은 환경 규제와 가족계획 지원을 제한하려는 공화당의 요구를 막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미 하원은 11일부터 2011회계연도 본예산 심의에 들어가 13일께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면 상원은 곧바로 이를 처리할 계획이다.

임박한 연방정부 폐쇄를 막기 위해 상원은 1주일짜리 잠정예산안을 8일 자정 직전 통과시켰고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이에 서명했다. 미국 헌법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출 법률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예산안이 의회에서 확정되지 않으면 지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의회는 '지속 예산법(continuing resolution)'을 활용해 이른바 잠정예산안을 통과시킨다. 전년도와 동일한 예산으로 당분간 정부를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임시방편 예산제도이다.

예산안 타결의 최대 승자로는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을 꼽을 수 있다. 강도 높은 예산 삭감을 주장한 공화당 지도자들과 이에 반대한 오바마 정부 사이에서 정치력을 발휘함으로써 파국을 막았기 때문이다. 베이너 의장은 5월 연방정부 부채 한도 증액과 2012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